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바람산 어린이공원에서 대학생 김아무개(20)씨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교생 이아무개(16)군의 블로그에 “죽음은 누구나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관문”, “(누군가 나를 죽이려 한다면) 너 죽고 나 살자” 등의 글이 게시되어 있다. 인터넷 화면 갈무리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수사
가해 고교생들 흉기 미리 마련 ‘계획 범행’ 정황
경찰 “뒤에서 목 잡고 찌른뒤 반항하자 또 찔러”
가해 고교생들 흉기 미리 마련 ‘계획 범행’ 정황
경찰 “뒤에서 목 잡고 찌른뒤 반항하자 또 찔러”
대학생 김아무개(20)씨는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즐겼다. 게임을 하다 또다른 대학생 박아무개(20)씨를 만났다. 올해 초 두 사람은 연인이 됐으나, 이내 위기가 왔다. 박씨가 이른바 ‘사령 대화방’에 가입한 사실을 김씨가 알게 됐다. 사령 대화방은 ‘사령’(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게 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곳이다.
여자친구 박씨는 지난 1월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다. 고교생 이아무개(16)군과 홍아무개(15)양도 대화방에 들어왔다. 이들은 ‘분신사바’(귀신을 부르는 주문) 등 심령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씨는 그런 이야기를 견딜 수 없었다. 대화방 탈퇴를 종용하는 김씨의 말을 여자친구 박씨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박씨는 두 고교생과 함께 또다른 비밀 채팅방을 만들었다. 김씨의 가입은 막았다.
김씨는 두 고교생과 다퉜다. 상대의 블로그나 카페에 들어가 “죽여버리겠다”는 등 악성 댓글도 주고받았다. 결국 지난달 초 김씨와 박씨는 결별했다. 그러나 옛 여자친구를 사령 카페에서 빼내려는 김씨의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저녁 7시30분께, 김씨는 두 고교생을 만나러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바람산 어린이공원에 갔다. “목적은 ‘레카’(여자친구 박씨의 아이디) 구출. 무력 따위 안 써. 조용히 빼내오는 거야.”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들에게 만남의 상황을 카카오톡으로 알렸다. “전부 다 왔어. 레카도 있어.”
그들에게 사과한다는 뜻을 전하려고 선물도 준비했다. 온라인 게임 등에 쓸 수 있는 5만원대의 컴퓨터 그래픽 카드였다. “레카는 갔어.” 저녁 7시59분 김씨는 친구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무슨 이유인지 여자친구 박씨가 먼저 공원을 떠난 것이다. 곧이어 저녁 8시13분, 김씨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다. “점점 골목, 웬지 수상.” 1시간여 뒤, 김씨는 몸 곳곳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2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김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1일 고등학생 이아무개(16)군과 홍아무개(15)양을 신촌 어느 찜질방에서 붙잡았고, 2일 경기도 의정부 집에 있던 대학생 윤아무개(18)씨를 추가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윤씨와 이군은 30일 저녁 바람산 어린이공원에서 김씨를 흉기로 40여차례 찔러 숨지게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가 김씨의 목을 뒤에서 붙잡고 이군이 흉기로 찔렀는데, 김씨가 거세게 반항하자 거듭 찌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와 이군은 피해자 김씨가 “사과하고 싶으니 만나자”고 요청하자 범행 하루 전인 29일 따로 만나 흉기 마련 방법 등을 공모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김씨의 여자친구 박씨도 지난달 24일 블로그에 “사람 마음 갈가리 찢어놓고 … 사람 실컷 망가뜨려놓고 미안하면 다야? … 진심으로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에서 박씨는 “(이군·홍양 등과 함께) 김씨를 만나자마자 곧 자리를 떴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지만 이런 일까지 벌어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의 복잡한 관계도 밝혀졌다. 박씨는 그동안 용의자 이군에게 과외수업을 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홍양은 이군의 여자친구이고, 김씨의 목을 조른 윤씨는 홍양의 소개로 이군을 알게 됐다. 윤씨는 숨진 김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은 블로그에 최근 ‘죽음문답’이라는 글을 남긴 것이 확인됐고, 이군의 여자친구 홍양은 어느 사령 카페에 “인간들이 사령의 존재를 너무 함부로 생각(한다)”는 글을 올리는 등 관련 활동에 깊이 심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숨진 김씨의 친구 이아무개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씨는 여자친구 박씨가 ‘사령 대화방’ 활동을 하면서 이상해졌다고 생각했고, 그 활동을 말리는 과정에서 다른 회원인 이군·홍양 등과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용의자 모두 평범한 가정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잔혹하게 김씨를 살해할 만한 다른 배경이 있는지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군·홍양·윤씨 등의 혐의가 드러나는 대로 이르면 3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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