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성산동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개관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2층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추모공간에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벽돌이 켜켜이 쌓여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부지선정 등 논란에 9년 걸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굴곡진 역사를 기록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9년에 걸친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5일 개관한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자락의 개인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 박물관은 연면적 308㎡에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이뤄져 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돌벽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유언을 새겨 넣었다. “우리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살아남은 게 꿈같아. 꿈이라도 너무 험한 악몽이라.” 박물관 곳곳에 위안부 피해 역사를 기록한 사진·영상과 증언자료를 전시했다.
건립 논의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후손들이 우리 역사를 보고 배워 우리처럼 수난 당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피해 할머니들의 뜻이 초석이 됐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04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위원회’를 발족하고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어린 학생들은 용돈을, 여성 노동자는 월급의 일부를 쪼갰다. 수녀들은 수녀회가 주는 생활기금을 모아 냈다. 일본의 어느 교사는 퇴직금의 절반을 내놓았다.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독일 등 국외 동포들도 성원을 보냈다. 그동안 20만명이 모금에 참여해 20억원을 만들었다.
부지 선정 과정은 험난했다. 2006년 서울시로부터 서대문독립공원 안 매점건물 부지에 박물관을 지을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지만, 광복회와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등은 “순국선열을 기리는 곳에 위안부 박물관이 들어서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서울시는 남은 행정절차를 미뤘고, 사업은 지체됐다. 그사이 피해 할머니들은 자꾸 세상을 떴다. 하루빨리 박물관을 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른 자리를 물색했고, 결국 성미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린이들에게 평화의 공간을 선물한다는 뜻으로 5월5일에 개관한다”며 “아직 끝나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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