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집어삼킨 노래방 화재…비상구에 ‘1번방’

부산 주점 참사현장 가보니
불법개조가 화 키워

비상구 3곳중 1곳 고쳐
접이식 사다리도 철거

쓰레기통·맥주상자 쌓아
다른 2곳도 제구실 못해

주점·당국 개조시점 논란

지난 5일 저녁 8시52분께 부산 서면 ㄴ빌딩 3층 ㅅ노래주점.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ㄱ사 직원 김아무개(23)씨와 스리랑카 노동자 3명 등 12명이 25번 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26개 방 가운데 출입구에서 22m 안쪽에 있는 방이었다. 갑자기 종업원이 뛰어들어와 “불이 났다.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매캐한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덮쳤다. 저마다 숨을 참고 비상구를 찾았다. 설계도면대로였다면 25번 방 바로 옆 비상구를 열고 빈 방인 부속실(20여㎡)의 창문 외벽에 달린 접이식 사다리를 타고 대피할 수 있었겠지만, 탈출할 수 없었다. 업주가 2009년 7월 영업허가를 받은 뒤 접이식 사다리를 없애고, 창문 앞에다 소파를 들여놓고 1번 방으로 꾸며 손님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씨 등은 칠흑같이 어두운 상태에서 출입구 쪽으로 가려다가 걸음을 되돌렸다. 출입구 쪽 24번 방에서 불길과 시커먼 매연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또다른 비상구를 찾아 통로를 헤맸다. 그러는 사이 하나씩 쓰러져갔다. 12명 가운데 4명만 빠져나왔다. 희생자 9명 가운데 8명이 25번 방에 있었다.

다른 비상구 2곳은 출입구 근처 화장실 옆에 있었지만 김씨 등이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여자화장실 옆 비상구는 너비가 약 50㎝에 불과한데다 비상구로 빠져나가는 통로와 비상구 문 앞에 빈 술병이 가득한 상자와 음식물쓰레기통들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화장실 옆 비상구는 업주가 2~3m 앞에 문을 추가로 만들어놨다. 불이 나 전기가 끊기고 유도등마저 꺼진 상태에서 비상구 문을 열었는데 계단이 나오지 않고 또다른 문이 가로막고 있다면, 벽으로 오인하고 우왕좌왕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세 개의 비상구 모두가 사실상 가로막혔거나 사라져 숨진 김씨 등이 살아나오기가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만약 25번 방 바로 옆의 비상구와 접이식 사다리가 있었다면 숨진 9명 가운데 8명이 살았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말했다.

부산 ㅅ노래주점이 불법 개조한 1번 방(점선 안) 창문 바깥에 설치돼 있어야 할 접이식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

업주는 지난해 4월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 비상구가 있어야 할 곳이 1번 방으로 불법 개조됐다면, 소방 당국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지난해 8월 정기점검 때 시설 변경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부산진소방서는 7일 브리핑에서 “연면적 5000㎡ 이하인 건물은 소방서가 길게는 2년마다 정기점검을 하는데 연면적 3900㎡인 ㄴ빌딩은 화재탐지기 분야에서 2건이 지적됐을 뿐, 불법 변경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정기점검이 끝난 지난해 9월 이후 불법 변경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ㅅ노래주점 업주가 비상구와 사다리를 언제 폐쇄했는지를 확인해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ㅅ노래주점의 아래층에서 화재가 났지만 지금까지 안전점검을 벌이지 않은 점, 노래주점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입주한 연면적 5000㎡ 이하의 건물을 길게는 2년마다 정기점검하게 돼 있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부산진소방서 관계자는 “점검을 자주 하면 업소에 불편을 가져온다는 여론 때문에 점검 기준을 완화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건물 안의 세밀한 부분까지 검사를 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한편 숨진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고용한 ㄱ사는 이날 주한스리랑카영사관과 협의를 벌여 1인당 4500만원의 비용을 들여 숨진 3명의 주검을 항공기로 스리랑카로 옮기기로 했다. 한국인 6명의 주검은 동아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경찰은 숨진 9명의 주검을 부검했더니 모두 그을음과 일산화탄소 흡입에 의한 화재사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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