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새벽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서버 관리 업체 ㅅ사에서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가 담긴 서버를 압수한 검찰 차량을 당원들이 다른 차량으로 가로막자 경찰들이 방패로 차 창문을 부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격렬했던 압수수색 현장
21일 오전 8시10분께, 검찰이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 중앙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주요 당직자들은 당사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강기갑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은 ㅅ빌딩 12층 당사 사무실에서 검찰 수사관들의 진입을 막았다. 사무실 안에는 검찰 수사관 20여명과 당원 100여명이, 사무실 출입문 밖에는 경찰 50여명과 당원 40여명이 맞섰다. 몸싸움이 일었고 격앙된 목소리가 오갔으나 큰 충돌은 없었다. 압수수색이 무위로 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검찰은 중앙당사가 아닌 다른 곳에도 당원명부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취재진들이 뒤늦게 중앙당사로 몰려들던 이날 오전 9시께, 검찰은 진보당의 서버 관리업체인 서울 금천구 가산동 ㅅ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ㅅ사는 진보당의 당원명부 및 회의·운영 자료 등 각종 정보가 담긴 서버를 위탁 관리해주는 업체다. 부랴부랴 달려온 진보당의 서버 관리자는 압수수색 협조를 거절했다. 오후 2시께 경찰 1개 중대 100여명이 현장에 배치됐다. 물리력을 동원하겠다는 뜻이었다.
그제야 진보당 당직자들도 움직였다. 오후 4시께 강기갑 위원장과 박원석 국회의원 당선자 등 당원 50여명이 ㅅ사가 입주한 건물 2층 복도로 달려왔다. 이들이 연좌농성을 시작하자 경찰 4개 중대 400여명이 추가 배치됐다. 진보당도 당원 수를 늘렸다. 저녁 7시께 중앙당사를 지키고 있던 당직자 및 당원들까지 ㅅ사 사무실로 달려왔다. 중앙당사에서 시작된 대치는 서버 관리업체 사무실로 무대를 바꿨다.
22일 검찰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날 압수수색의 초점은 처음부터 중앙당사보다 서버 관리업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진보당 서버 27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돼 (압수 대신) 서버를 복사하기로 했지만, 1대 서버 복사에 12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진보당 쪽이 비협조적으로 나와 당원명부·선거인명부 등이 있는 ㅅ업체 서버 3개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재청구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서버에 검찰이 압수하려는 당원명부 등이 있는지 미리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밤 11시께, 검찰은 경찰을 앞세우고 ㅅ사 사무실에 진입했다. 연좌농성을 벌이던 강기갑 위원장, 박원석·김제남·김미희 국회의원 당선자 등은 손발이 들린 채 경찰에 끌려 나갔다. 검찰은 서버 3대를 통째로 압수했다. 날이 바뀌어 22일 0시30분께, 검찰은 서버를 승합차에 싣고 시동을 걸었다.
새로운 대치가 시작됐다. 서버를 싣고 건물을 빠져나가던 승합차를 당원들이 발견했다. “저기 간다.” 당원 100여명이 달려와 일부 당원은 차 앞에 드러누웠고, 몇몇은 차에 올라탔다. “정치검찰 물러나라.” “공안탄압 중단하라.” 당원들의 구호는 비명에 섞여 있었다. 승합차는 2시간 동안 100여m 남짓을 앞뒤로 오가며 갇혀 있었다. 경찰은 300여명을 동원해 당원들을 승합차에서 떼어냈다. 30대 남성 당원이 뇌진탕을 일으켜 잠시 의식을 잃었다. 새벽 2시30분께야 승합차는 서부간선도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승합차를 막느라 땀범벅이 된 당원 윤아무개(33·직장인)씨는 “수사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당원명부를 사용할 것이 뻔하다”며 “민간인 사찰 의혹도 있는데, 진보정당에 가입한 사람들 신상이 다 드러나게 되어 속상하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인 새벽 2시께 서울 대방동 중앙당사에 있던 검찰·경찰은 스스로 물러났다. 중앙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실패했지만, 당원명부가 포함된 서버는 이미 검찰 손에 들어온 상태였다. 이날 압수수색은 동쪽에서 으르다가 서쪽에서 치고 들어오는 전법을 연상케 했다.
22일 아침, 진보당 중앙당사와 ㅅ사 사무실에서 검찰과 경찰은 자취를 감췄다. 전날 당원, 검찰 수사관, 경찰, 취재진 등 100여명으로 붐볐던 중앙당 사무실 앞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다만 사무실 유리문은 천으로 꽁꽁 묶인 채 여전히 잠겨 있었다. 당 관계자들은 10층 진보정치연구소를 거치는 뒷문을 통해 사무실을 오갔다. 당직자와 당원이 아닌 이들의 출입은 금지됐다.
“마음이 어떻겠냐”고 텅 빈 당사 앞에 있던 한 당직자가 말했다. 더 물어도 대답 없이 한숨만 쉬었다. 밤새 중앙당 사무실을 지킨 이상규 당선자는 “압수수색 영장 기한이 27일 자정까지이므로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22일 “압수수색을 막고 차량을 파손한 박원석 당선자 등 4명에 대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이 수사중이며 구속영장 청구도 고려중”이라고 밝혔다. 정환봉 김지훈 황춘화 기자 bong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2007년 여름 청와대 갔더니, 노짱이 흐느껴 울더라고요”
■ ‘상생 우수’ 삼성전자의 두 얼굴
■ 진보당원 20만명 정보 압수…검찰 ‘정당자유’ 흔든다
■ 중 CCTV 앵커 “외국인 쓰레기 소탕해야”
■ 어머니 버린 자식, 무덤까지 감싼 어머니
■ “2007년 여름 청와대 갔더니, 노짱이 흐느껴 울더라고요”
■ ‘상생 우수’ 삼성전자의 두 얼굴
■ 진보당원 20만명 정보 압수…검찰 ‘정당자유’ 흔든다
■ 중 CCTV 앵커 “외국인 쓰레기 소탕해야”
■ 어머니 버린 자식, 무덤까지 감싼 어머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