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여파 대폭 길어져… “최소 열흘” 회사가 재촉
팀원들이 돌아가며 6주에 한번씩 주4일 근무하는 곳도
팀원들이 돌아가며 6주에 한번씩 주4일 근무하는 곳도
엘지생활건강의 김태연(28·대리)씨는 8월 말 2주의 ‘긴 휴가’를 간다. 여름 휴가철에 앞서 7월에서 9월 사이 최소 열흘치의 휴가를 쓰라는 권고문이 나왔기 때문이다. 주5일제 아래서 10일 휴가를 이어 쓰면 꼬박 14일을 쉬게 된다. 김씨는 “친구들과 앙코르와트를 다녀온 뒤 고향 집에도 들르고 2박3일짜리 국내 여행도 간다”며 “휴가가 넉넉해 친구들과 일정 맞추기도 쉬웠다”고 말했다. 엘지생활건강 인사팀 관계자는 “연차를 한달에 한번 정도 쓰는 임직원이 50% 수준이라 좀더 적극적으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6년차 대리인 지에스리테일의 서일호(34)씨는 올여름 휴가를 두차례 가기로 했다. 7월 초 필리핀 세부를 다녀온 데 이어 8월 초엔 동해안 래프팅을 간다. 17일의 연차휴가 가운데 7일을 이번에 써버릴 예정이다. 서씨는 “연차 서너개와 주말을 붙이면 동남아나 국내 관광지를 다녀오기엔 부족함이 없다”며 “한달에 한차례 재충전 시간을 제대로 갖게 되니 무더위도 견딜 만하다”고 말했다. 지에스리테일은 최근 부장·팀장 인사평가에 부서원들이 연차를 얼마나 썼는지를 반영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씨의 부서는 팀원들이 돌아가며 6주에 한번씩 주4일 근무를 할 방침이다. 2박3일의 짧은 휴가가 일상화되는 셈이다.
주5일제 사업장이 대폭 늘어나면서 여름철 휴가문화가 바뀌고 있다. ‘잘 놀아야 잘 일한다’며 ‘제대로 쉬기’를 권하는 한편, 휴가를 얼마나 썼는지 매달 집계하는 등 제도적으로 휴가 사용을 독려한다. 토요일 격주 휴무 등으로 자연스럽게 소진되던 연차휴가가 주5일제 시행으로 고스란히 남게 됐고, 회사들은 비용 감축과 업무 효율성 차원에서 휴가 사용을 권하고 있다. 결국 직장인들이 휴가를 ‘길게’ ‘자주’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주말부터 그 다음 주말까지 길어야 9일이란 휴가 불문율도 무너지는 분위기다. 휴가 시작일을 금요일로 잡거나 휴가 마지막 날을 월요일로 잡아 열흘짜리 휴가를 가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추은정(33·샘표 과장)씨는 “열흘치 계획을 잡아놓고 보니 직장생활 9년 만에 가장 긴 휴가를 가는 셈”이라며 “올 7월부터 주5일제 사업장이 된 혜택을 봤다”고 말했다. 씨제이의 배수정(34·대리)씨는 “8월 중순 금요일부터 열흘의 휴가를 간다”며 “예전엔 여름휴가 일정에 연차 하루 덧붙이는 게 아무래도 눈치가 보였는데 요즘은 서로들 권장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마다 ‘장기 휴가’ 정착 속도가 달라서 맞벌이 부부들에게 고민을 안기기도 한다. 회사원 김일진(34·대리)씨는 “우리 회사 분위기로는 2주 동안의 휴가가 가능한데, 아내 회사가 아무래도 힘들어서 9일짜리 휴가를 가기로 했다”며 “여행지가 유럽이라 욕심껏 길게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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