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밀 유포 등 적용 못하자
‘예비·음모’만으로 전례없는 기소
‘행위’ 아닌 ‘생각’을 처벌하는 격
법학자들 “궁여지책 법적용” 비판
‘예비·음모’만으로 전례없는 기소
‘행위’ 아닌 ‘생각’을 처벌하는 격
법학자들 “궁여지책 법적용” 비판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지난 21일 이른바 ‘위치정보시스템(GPS) 간첩사건’(<한겨레> 22일치 4면)으로 구속된 이아무개(74)씨 등 2명을 국가보안법의 간첩 예비·음모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이 이번처럼 ‘간첩 예비·음모’ 조항만을 적용해 기소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가 법원 판결문 검색시스템에 등록된 국가보안법 관련 판결문 2767건을 분석한 결과, 검찰이 간첩 예비·음모 조항을 적용한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이 2건도 간첩 예비·음모뿐만 아니라 간첩, 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제공 등 죄가 더 무거운 여러 조항과 함께 적용된 경우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이 유례없이 간첩 예비·음모 조항만을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무리한 법 적용으로 이씨 등을 기소했다는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검찰의 이번 기소는 ‘행위’가 아닌 ‘생각’을 처벌하는 예비·음모죄의 악용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수사 결과, 이씨 등이 수집한 자료는 국가기밀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누구나 구할 수 있는 팸플릿 수준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들이 국가기밀에 해당되는 실제 장비를 구입하기 위한 ‘예비행위’로 팸플릿 등을 수집했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검찰은 엔에스아이(NSI) 4.0과 같이 미국 정부가 철저히 통제하는 물품을 이씨 등이 실제로 구입할 개연성은 매우 낮다고 인정했다.
결국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낮은 행위를, 그것도 예비·음모했다는 이유로 처벌하겠다는 게 검찰의 결론인 셈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이광철 변호사는 “경찰이 부실수사한 사건을 넘겨받아 입장이 곤란해진 검찰이 차마 불기소 처분을 내리지는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기상천외한 법 적용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이번에 적용한 국가보안법의 간첩 예비·음모 자체가 문제가 많은 법률 조항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예비·음모죄는 어떤 위험이 나타나기도 전에 단순히 경향성을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라며 “특히 국가보안법 자체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것 같은’ 일을 처벌하는 일종의 예비·음모 처벌적 성격을 가지는데, 이 법에 다시 예비·음모죄를 적용하는 것은 이중 예방을 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위가 아닌 생각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로마법 시대인 2000년 전부터 이어져온 현대법의 기본 철학이자 원칙”이라며 “예비·음모죄는 이러한 법 원칙의 전통 바깥에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형법에서 모든 예비·음모죄를 없앤 프랑스의 경우,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처벌하지만, 이 경우에도 범죄를 실행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일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될 때에만 처벌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국가보안법과 같은 특수법 말고도 형법에 나오는 죄의 30%가량에 대한 예비·음모를 처벌하고 있어, 세계적으로도 예비·음모를 가장 많이 처벌하는 나라”라고 설명했다.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학 교수(법학)는 “국가보안법만이 아니라 형법 총칙에서 예비·음모죄 관련 조항을 뜯어고쳐야 한다”며 “총칙에 예비·음모죄가 계속 존재한다면 권력자들이 언제든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악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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