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운전자 적반하장에 ‘자구책’
운전 10년 경력의 김미숙(가명·32)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지난달 서울 강남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지해 있는 김씨의 차를 차선을 넘어 들어온 고급차가 들이받았다. 김씨 차의 사이드미러가 깨졌다. 상대 차량 운전자의 잘못이 명백했다.
“이 차가 얼마짜리인 줄 알아?”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 운전자는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당했을 뿐인 김씨는 한마디도 못했다. 남자는 제 화풀이만 하고 사라졌다.
김씨는 “운전도 오래 했고 차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소리를 지르니까 순간 움츠러들었던 것 같다”며 “내가 남자였어도 그 아저씨가 그렇게 막무가내였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도로는 남녀 성차별이 여전한 공간이다. 이후 김씨는 “여자 혼자 운전하고 다니는 게 불안하다”는 남편의 권유를 받아 승용차에 ‘블랙박스’를 달았다.
블랙박스는 운전중 차량 주변 상황을 녹화하는 영상 기록장치다. 운전에 미숙한 여성을 ‘김여사’라고 조롱하는 일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차량 사고 영상을 기록하는 블랙박스를 구매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박성호 현대홈쇼핑 자동차 담당 마케팅디렉터는 “2009년부터 블랙박스를 판매해 왔는데, 올해 처음 여성 대 남성의 구매 비율이 55 대 45로 역전됐다”며 “대개 30대 초중반의 여성 운전자들이 직접 구매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자동차용품 인터넷쇼핑몰의 대표는 “올해 블랙박스를 구입하는 여성이 지난해 견줘 200%가량 늘었다”며 “여성 고객을 의식한 제조사들도 조작이 간편하고 다루기 쉬운 블랙박스를 내놓는 추세”라고 말했다.
여성 운전자들은 각종 범죄에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블랙박스를 설치하고 있다. 여성 운전자를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 ‘핑크드라이버’의 정은란 대표는 “어두운 주차장이나 으슥한 골목길에서 일부러 사고를 낸 뒤 여성 운전자를 내리게 해 범죄를 저지르는 일들이 많다”며 “범죄에 대한 불안감도 여성들이 블랙박스를 장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1990년 전체 운전면허 취득자 가운데 12.2%에 불과했던 여성 운전자는 지난해 39.5%를 차지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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