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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웃간 민원’을 고소로 바꿔치는 검찰

등록 2012-08-01 19:21

경찰이 진정·내사 사건 수사지휘 거부하자 ‘꼼수’
민원인 자칫 무고죄 위험…상대방은 피의자 전락
서울에 사는 직장인 ㄱ씨는 지난 6월 자신의 휴대전화에 불법 도박장 광고 메시지가 뜨자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불법 사행성 카지노를 단속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최근 ㄱ씨는 자신의 게시글이 검찰에 ‘고소사건’으로 정식 접수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불법 도박장 업주들을 고소한 격이 된 것이다. ㄱ씨는 “고소당한 업주들이 내 신상을 알고 해꼬지를 할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북 지역 한 어머니회 사무국장이던 ㄴ씨는 지난 6월 정부보조금 및 회비 130만원을 무단 인출한 어머니회 회장 ㄷ씨를 상대로 검찰에 진정서를 냈다. 그런데 검찰은 ㄴ씨의 진정을 횡령 혐의 고발사건으로 바꿔 접수했다. ㄴ씨는 “ㄷ씨와 같은 지역 사람이고, 고발하면 번거롭기도 해서 ‘확인 좀 해달라’는 취지로 진정을 냈다”고 말했다. ㄷ씨와 직접 갈등을 빚고 싶진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검찰은 ㄴ씨에게 직접 연락해 ‘진정과 큰 차이가 없으니 고발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이런 일의 발단은 올해 초부터 시행된 ‘검경 수사권 조정안(대통령령)’이다. 조정안 80조(검사 수사사건 지휘)는 “경찰은 검사가 접수한 사건에 대해 수사할 것을 지휘받은 때에는 신속히 수사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경찰은 ‘검사가 접수한 사건’에 내사·진정 사건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한 수사 지휘를 거부해왔다.

이같은 경찰의 방침에 대응하기 위해 검찰이 내사·진정사건을 고소·고발사건으로 바꿔 접수한 뒤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내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내사사건의 수사 지휘를 거부하는 경찰을 상대로 검찰이 일종의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민원대상자나 피진정인들이 피의자 신세로 전락하고, 민원인·진정인들도 자칫 무고죄로 처벌당할 위험에 노출되는 등 애꿎은 시민들의 권익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사·진정사건과 달리 고소·고발은 사건번호가 부여(입건)되고 형사기록이 남는다. 내사·진정사건이 고소·고발로 접수되는 순간 피내사자나 피진정인들은 피의자 신분이 된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출석요구를 거부하면 강제소환 대상이 되며, 기소되지 않더라도 검찰에 사건기록이 남는다.

검찰은 ‘진정인과 피진정인 모두에게 실질적 피해가 없어 문제가 안된다’는 태도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진정이든 고소·고발이든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며 “형사기록이 남더라도 당사자에게 구체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고소와 진정의 차이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검찰이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경찰 관계자는 “고소사실이 허위로 밝혀지면 고소인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데,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수사편의에 따라 고소·고발로 접수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의 이런 행태는 고위 공무원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비리 의혹을 ‘내사사건’으로 분류해놓고 “정식 수사가 시작되지 않았다”며 언론의 확인요청도 거부하는 평소 관행과 대비된다. 검경 갈등 과정에서 서민들만 ‘과잉수사’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판사는 “국민 권익보다 자신들의 편의를 우선한다는 것이 검찰의 가장 큰 문제”라며 “권력을 가진 검찰은 도의적 의무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철 이정국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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