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반대’ 밀양 할머니의 하루
매일 해발 500m 건설현장까지
굽은 허리로 발 질질 끌며 올라
“마을 지키며 살라꼬 가는기라”
매일 해발 500m 건설현장까지
굽은 허리로 발 질질 끌며 올라
“마을 지키며 살라꼬 가는기라”
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경남 밀양시 주민들이 고령의 나이에 뙤약볕 시위를 하다 잇따라 쓰러지고 있다.(<한겨레> 1일치 11면) 이들은 폭염 속에서 매일같이 해발 500여m의 산을 오르내리다 쓰러졌다. 산 정상에 송전탑 공사장이 있기 때문이다.
1일 아침 6시45분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동화전마을 뒷산 어귀로 박금자(73·사진) 할머니 등 4명의 70대 노인이 걸어왔다. 박 할머니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었다. “다리 구부리기가 힘들어. 지팡이 없으면 몬 와.” 할머니는 8년 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
16살 때부터 동화전마을에서 살았다. 남편은 20년 전 세상을 떴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한 뒤, 지난 시절을 곱씹으며 혼자 사는 처지다. 텃밭에서 깻잎 농사를 지으며 소일했던 할머니에게 최근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송전탑이 들어서는 걸 막고 싶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마을이 망가지고, 마을이 망가지면 70여년 평생이 무너질 것이라고 할머니는 믿는다.
송전탑 부지가 산 정상에 있으므로 공사를 막으려면 산에 올라야 한다고 할머니는 또한 믿는다. 뙤약볕에 산을 오르는 것은 고령의 노인들에겐 살인적이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내가 가지 않으면 막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밀양시의 기온은 최고 섭씨 35도까지 올랐다.
아침 7시10분. 박 할머니 일행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구부정하게 허리 굽힌 할머니는 지팡이에 의지해 발을 질질 끌며 오르막을 탔다. 무릎에는 압박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할머니는 금세 대열의 맨 뒤로 처졌다. “할매는 이제 그만 오소.” 마을 이장 이아무개(60)씨가 말했다. “내도 살라꼬 가는 기라. 오늘 하루만 가자.” 할머니가 답했다.
잠시 뒤 할머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딸의 전화였다. ‘왜 또 올라갔느냐’는 질책이 쏟아졌다. “사람 수가 적어 할매들이 안 가면 안 된다.” 할머니는 출가한 딸을 달랬다.
한시간여 만에 도착한 뒷산 정상에서 시뻘건 토사가 맨몸을 드러냈다. 한전이 송전탑을 세우겠다며 벌목한 자리다. 먼저 온 작업 인부들이 익숙하게 노인들을 맞았다. “오늘도 오셨네요.” 그들 역시 밥벌이를 구하는 가난한 이들이다. 노인들은 옥수수와 떡을 꺼내 인부들에게 건넸다. 그 옆에 돗자리를 펴고 노인들도 옥수수와 떡을 먹었다. 두달째 이어지고 있는 아침 식사다.
아침 8시10분. ‘우두두두’ 굉음을 내며 헬리콥터가 도착했다. 박 할머니의 눈빛이 빛났으나, 거센 바람에 날린 흙먼지가 할머니를 덮쳤다. 헬리콥터는 포클레인 조립 부품 등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노인들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이었다.
함께 온 백아무개(77) 할머니가 언성을 높였다. “지금 여게 소풍 왔나? 짐 못 내리게 막았어야지.” “우야꼬. 헬기 밑에 누워 있어야 되나.” 박 할머니는 발을 동동 굴렀다.
노인들의 절박함에 대해 헬기는 별 관심이 없다. 매일 아침 8시께부터 오후 늦게까지 수차례 산 정상에 건설 자재를 부려놓는다. 송전탑 부지가 들어서는 밀양 일대 마을마다 평화로운 삶이 무너지는 게 싫은 노인들이 산에 오르느라 바쁘다. 건설 자재 반입을 막아 공사를 중단시키겠다고 나섰지만, 헬기를 막아 낸 노인은 지금껏 없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는 최근 “공사를 중단하고 대화부터 하자”고 한국전력에 요청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노인들은 이날 오후 3시까지 버티다 산을 내려왔다. 박 할머니는 내일도 산에 오를 생각이다.
밀양/글·사진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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