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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저소득층 아이들 아동센터 에어컨 앞 ‘옹기종기’

등록 2012-08-07 19:10수정 2012-08-07 23:51

폭염 피해 아침부터 몰려들어
센터, 예산부족에 전기료 부담
일부선 선풍기로 견뎌내기도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 김민우(가명·11)군이 늦잠을 자고 일어나면 집안은 벌써 후텁지근하다. 낡은 에어컨이 있지만 부모님은 전기료가 아까워 틀지 않는다. 섭씨 35도를 우습게 넘어서는 폭염 속에서 선풍기 한대로는 집도 사우나가 된다. 점심 때가 지나면 김군은 서둘러 서울 노원구의 집 근처 ‘아동센터’에 간다. 5분만 참고 땡볕 아래를 걸으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올해 초 김군의 부모가 운영하던 슈퍼마켓이 파산한 뒤, 아버지는 날품을 팔고 있다.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한다. 김군은 집보다 아동센터가 좋다. 에어컨이 있는 아동센터에서 밤 9시까지 놀다가 김군은 열대야가 서성이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동센터 교사 표아무개(26)씨는 “집에 가면 더우니까 집에 늦게 가려고 하는 애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저소득층 아이들은 아동센터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모여든 아이들을 내칠 수 없는 아동센터는 폭염을 버틸 예산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전국 기초단체별로 운영되는 지역 아동센터는 한부모 가정이나 기초생활수급 가구 등 소외계층 아이들이 모이는 놀이방이자 공부방이다. 예산은 자체적으로 마련하거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아 충당한다.

올여름 전국의 아동센터는 소외계층 아이들의 ‘폭염쉼터’가 됐다. 아동센터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은 문 열기 한시간 전부터 와서 건물 주변에서 서성이거나, 문닫을 시간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으면 창문으로 들어가려는 아이들도 있다”고 어느 아동센터 관계자는 말했다. 이 때문에 정해진 운영시간을 넘겨 밤늦도록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일이 잦아졌다. 서울 성동구 ㄷ아동센터의 이수경(49) 센터장은 “청소하고 정리하면 아이들이 마지못해 하나둘씩 집에 간다. 억지로 몰아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집이 덥다고 동생들을 데려오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생만 맡아주는 아동센터의 특성상, 미취학 아동에 대해선 지자체의 보조금이 지원되지 않지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언니들이 동생까지 챙겨 에어컨이 있는 아동센터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동센터도 가난하다. 29명 정원의 서울 지역 한 아동센터의 경우, 매달 375만원의 지원금을 지자체에서 받고 있다. 이 가운데 20%(75만원)는 무조건 교육프로그램에 써야 한다. 상근교사 2명 인건비(240만원)를 빼면 60만원가량이 남는다. 각종 보험료 20만~30만원을 내면, 실제로는 30만~40만원으로 공과금을 내고 아동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에어컨 요금을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서울 송파구의 한 지역아동센터장은 “지난해 여름 전기료만 20만원 나왔는데, 올해는 에어컨 가동시간을 두배 이상 늘려 전기료 청구서 받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관악구의 ㅈ아동센터는 에어컨이 있긴 하지만 운영비가 부족해 틀지 않는다. 이곳 아이들은 선풍기 4대 앞에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한다.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에어컨 바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름방학은 각종 야외활동을 즐기는 시간이지만, 아동센터 아이들은 좁은 공부방·놀이방에 모여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서울 지역 ㅈ아동센터 교사는 “전기료 부담을 생각해 야외활동 예산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학습지 지도 등 정적인 활동밖에 못하고 있다”며 “한창 자라는 아이들을 센터 안에서만 지내게 하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성태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은 “시설이 훨씬 좋은 학교 교실이나 지역의 수영장·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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