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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지금도 사찰 불안에 떠는데 책임자는 금배지 달고…”

등록 2012-08-15 18:46

“자동차만 봐도 촬영당할까 주춤”
“벌컥벌컥 화내거나 눈치보게 돼”
“우리만 당했을까…진행형일수도”
“위법” 판결도 기무사에선 불복
“해명했다면 엄씨 비극 없었을것”
기무사 사찰 피해자들 고통

국군 기무사령부가 저지른 민간인 불법사찰의 압박에 떠밀려 지난 7일 엄윤섭(45)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가권력이 자신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엄씨에겐 삶을 포기해서라도 떨쳐내고 싶은 공포였다.(<한겨레> 13일치 1·12면)

2009년 8월, 경기도 평택에서 쌍용자동차 파업 관련 집회를 몰래 촬영하던 기무사 수사관이 시민들에게 붙잡혔다. 수사관의 캠코더와 수첩에는 여러 민간인들의 동향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15명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그 재판은 진행중이다. <한겨레>는 그들 중 연락이 닿는 10명과 인터뷰를 했다.

3년이 흘렀지만, 최초의 충격은 분노와 불안감으로 바뀌어 지금까지도 이들을 괴롭힌다. “차 안에서 (기무사 요원이) 나를 촬영한 것 같은데, 그때 이후 자동차만 보면 주춤거리거나 한번씩 돌아봐요.” 구아무개(44)씨는 당시 민주노총 금속노조 지회장이었다.

기무사 사찰 대상에 자신도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구씨는 술자리에서 벌컥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후배들이 ‘형이랑 술 마시면 카메라에 찍히겠네’라고 농담을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됐어요.” 그는 기무사가 자신들만 사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수사관이) 미숙해서 발각됐을 뿐, 실제로는 민간인 사찰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을 것”이라는 게 구씨의 확신이다.

“‘그 동영상이 전부일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당시 민주노동당 당원이던 백아무개(35)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세상에 밝혀지지 않았을 뿐, (사찰이)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잖아요.” 불안감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그 공포는 이들의 삶에 생채기를 남겼다. 재일동포 학교에 우리말 책을 보내는 시민단체 ‘뜨겁습니다’의 회원인 최아무개(44)씨도 민간인 사찰의 표적이 됐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은 그때부터 흔들렸다.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고, 누군가의 눈치를 자꾸 보게 되고, 작은 일에도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제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놀라고….”

시민단체 ‘뜨겁습니다’의 다른 회원 박아무개(39)씨에게 엄씨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저만 해도 (기무사 민간인 사찰을)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분에겐 사찰이 생명을 위협하는 고통이었던 거죠. 그분에게 죄송하고 스스로 참담합니다.”

기무사는 프리랜서 동화작가인 김아무개(43)씨도 사찰했다. 김씨는 숨진 엄씨를 기억한다. “당시에도 그의 얼굴이 가장 어두웠어요. ‘힘들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죠. 가슴이 너무 아파요.” 소송에 참여한 15명이 사찰 피해자의 전부는 아니다. “피해자 중 일부는 2차 피해를 당할까봐 당시 기자회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동화작가 김씨는 설명했다.

정부와 기무사는 지금까지도 민간인 사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적법한 정보수집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1·2심 법원 모두 “위법행위”로 판단하고 손해배상 판결을 했지만 정부는 이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사찰 당시 기무사령관이던 김종태씨는 지난 4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당선돼 국회 국방위원회에 배정됐다.

불법사찰의 책임자는 금배지를 달고, 그 피해자는 세상을 떴다. 사찰 피해자 백씨는 그런 현실이 억울하고 분하다. “기무사가 사찰에 대해 사과하거나, 납득할 만한 해명이라도 해줬다면 엄씨가 그토록 불안해하며 살지 않았을 겁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기막힌 비극도 일어나지 않았을 테죠. 안 그렇습니까?”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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