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거리에서 김아무개씨가 흉기를 휘둘러 길 가던 시민 4명이 부상을 입고 쓰러진 것을 경찰이 부축하고 있다. 노컷뉴스 제공
묻지마·무차별 칼부림 왜?
여의도 칼부림 남성 ‘실직 앙심’ “이용만 하고 퇴출…보복 별러”
전자발찌 찬 채 성폭행한 범인 “잡히면 교도소, 안잡히면 그만”
피의자들 대부분 노동소외 계층…경찰에 잡힐 줄 알면서도 저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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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잇따라 일어난 범행들의 공통점은 피의자가 제대로 된 직장이 없는 노동 소외계층이고, 경찰에 붙잡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22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도 전형적인 ‘자포자기형 분노 범죄’였다. 전 직장동료 2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김아무개(30)씨가 이날 범죄를 저지른 뒤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범행현장이 사무실 건물이 밀집한 지역인데다 퇴근시간이어서 길거리에는 행인이 가득했다. 불과 50m 거리에는 새누리당 당사가 있어 전경 1개 중대가 경비를 서고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전 직장에서의 극심한 경쟁과 갈등, 그에 따른 퇴사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김씨는 이번 흉기난동 사건의 피해자 김아무개(33)씨, 조아무개(29)씨와 같은 직장에서 팀장으로 일하다 퇴사했다. 실적부진과 동료들의 험담에 스트레스를 받아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이후 김씨는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새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퇴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1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도 일자리와 관련이 있다. 일용직 노동자인 강아무개(39)씨는 당시 폭우가 내려 일거리가 없자 아침부터 혼자 술을 마셨다. 이후 술집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여주인과 술집에 들어오던 손님을 흉기로 찔렀고, 도망쳐 들어간 고아무개(65)씨 집에서도 흉기를 휘둘러 고씨를 숨지게 하고 고씨의 아내와 아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앞서 지난 21일 서울에서 가정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서아무개(42)씨는 전자발찌를 찬 채로 범행을 저질렀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서씨는 범행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서씨는 경찰에서 “‘잡히면 교도소에 가고, 안 잡히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에는 전철 1호선 의정부역 승강장과 전동차 안에서 유아무개(39·구속)씨가 흉기를 휘둘렀다. 유씨는 자신이 전동차에서 침을 뱉었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은 10대 2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뒤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반 승객들에게도 흉기 난동을 벌여 모두 8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유씨는 10여년 전부터 일정한 직업과 주거 없이 혼자 폐쇄적인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고를 겪어온 유씨는 이날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울 신설동으로 가기 위해 경인지하철인 1호선 전동차를 탔다고 진술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이런 자포자기형 범죄가 잇따르는 이유로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을 꼽았다. 표 교수는 “지금 우리 사회는 높은 실업률과 그에 따르는 경제적 압박, 가계부채 문제, 대인관계가 경쟁적·적대적·갈등적으로 돌아가는 등 심각한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다”며 “경쟁에서 밀리거나 실패한 사람들이 사회 전체를 적으로 보고 불만과 분노를 축적하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는 것은 ‘죽여버리겠다’거나 ‘언젠가는 내가 터뜨리겠다’는 잠재적 시한폭탄과 같은 분노를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며 “우리 사회를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비뚤어지고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염건령 한양대 사회교육원 교수(경찰행정학과)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다 보니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희망이 박탈되는 상황이 생긴다”며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들과 특히 금방 출소하거나 취직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회적 분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동 소외층의 무차별 범죄는 2008년 일본의 ‘아키하바라 칼부림 사건’으로 상징된다. 그해 6월7일 낮 12시30분께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역 부근 네거리에서 가토 도모히로(당시 25살)가 2t 트럭을 몰아 보행자를 치고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하차해 등산용 칼을 일대 행인들에게 무차별로 휘두른 사건이다. 10~70대 7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을 입어 일본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범행 현장에서 체포된 가토는 경찰 조사에서 “세상이 싫어졌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아키하바라에 갔다. 누구라도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교 졸업 뒤 5년간 파견노동자로 전전한 이로, 부모와의 불화, 고독, 세상에 대한 적개심 등이 쌓여 살인을 저지른 결과였다.
이듬달 22일엔 또다른 파견사원 간노 쇼이치(당시 33살)가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한 서점에서 고객들에게 칼을 휘둘러 22살 여대생이 숨지고 21살 여성이 중상을 입었다. 그 역시 “회사 일이 잘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아무나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해 일본에선 ‘도리마’(길거리 악마)로 불리는 무차별 살인이 5건 발생했고, 절반 이상이 청년 노동 소외층에 의한 것이었다. 일본은 서둘러 비정규직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정환봉 유신재 임인택 기자 ohora@hani.co.kr 사진/노컷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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