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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자포자기 부르는 사회, 불특정다수 향한 분노 촉발

등록 2012-08-23 19:25수정 2012-08-23 22:52

22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관들이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씨를 영등포구 여의도동 크레딧프라자 뒤편에서 제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22일 저녁 7시30분 서울 영등포경찰서 경관들이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씨를 영등포구 여의도동 크레딧프라자 뒤편에서 제압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공
절망살인의 시대
여의도 등서 잇단 ‘무차별 범죄’
소외계층이 내면에 분노 축적
오랜기간 복수심 키우며 사전계획
전문가 “경제적 낙오자 한계상황”
지난 22일 김아무개(30)씨가 서울 여의도에서 벌인 칼부림 사건은 이제껏 국내에서 일어난 여느 범죄들과 다르다. 실직자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전 직장 동료에 대한 증오를 품었던 김씨는 미리 범행을 계획하고 무고한 행인들까지 무차별 공격했다. 미국 등 서구에서 종종 일어나는 ‘다중살인’(Mass Murder)과 꼭 닮았다.

미국 등에서 다중살인을 저지르는 이들 가운데는 해고·실직 등 사회경제적 곤궁에 처한 경우가 많다. 더 나빠질 게 없다는 관념에 빠진 이들은 범행 직후 자살하거나 태연히 체포당하기도 한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을 비롯해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들도 피의자들이 모두 소외·빈곤 계층이고 체포·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절망살인’ 또는 ‘절망범죄’가 본격화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최근 급격히 진행된 사회 양극화의 결과, 한계상황에 빠진 이들이 절망적 상황에 대한 분노를 특정 집단·군중을 표적 삼은 흉악범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전과가 없는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이었다. 대학 중퇴 뒤 계약직을 전전하다 카드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됐고, 재취업 길도 막혀버렸다. 자살을 고민하던 그는 ‘혼자 죽기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전 직장 동료들에 대한 복수심을 키웠다. 적어도 몇달 전부터 범행을 계획하며 흉기로 쓸 칼을 구입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숫돌에 칼을 갈았다”고 말했다.

사건 2시간 전에 미리 현장에 도착한 김씨는 다른 옛 동료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침착했다. 범행 대상으로 염두에 뒀던 직장 동료 2명이 나타나자 조용히 뒤를 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이후엔 길을 지나던 사람 2명도 찔렀다. “회사 옥상에 올라가 자살할 생각이었다”고 김씨는 경찰에서 털어놓았다. 고시원 지하방에서 지내온 그는 체포 당시 현금 200원을 들고 있었다. 극심한 빈궁 상태에서 치밀하게 범행과 자살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이번 사건은 상당히 미국적”이라고 말했다. 2010년 8월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유통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된 흑인이 “날 괴롭히던 (직장 내) 인종주의자들을 죽이겠다”며 권총을 난사해 8명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09년 4월 뉴욕주에선 진공청소기 공장에서 해고된 베트남계 미국인이 총기를 난사해 이민서비스센터 직원 등 13명이 숨졌다.

자신의 경제적 빈궁을 초래했다고 여겨지는 증오의 대상을 고르고, 실제 범행에선 그 주변 사람들까지 해쳤다는 점에서 ‘여의도 칼부림’ 사건은 미국에서 발생한 이들 총기난사 사건과 유사하다. 총이 아닌 칼을 사용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절망에 기초한 다중살인이 한국에서 더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높은 자살률이 더 많은 다중살인 또는 절망살인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임상심리학자인 조용범 박사(심리학)는 “국내 자살 원인의 70~80%가 실직과 빚 등 경제문제”라며 “지금까지는 자신의 절망적 상황을 자책하며 자살했다면, 최근 들어 그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신재 김지훈 엄지원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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