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구 전 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인터뷰/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
안원구(52)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2011년 11월 출소했다. 이후 개인 사무실을 마련해 지난 4년 동안 겪은 일을 정리하는 <잃어버린 퍼즐> 원고를 집필해왔다. 지난 7월 이후 안 전 국장은 <한겨레>와 수차례 만나 마무리 작업 중인 원고 내용을 토대로 여러 사건에 대해 털어놓았다. ‘도곡동 문건’ 파동, 태광실업 세무조사 등에 대한 그의 기억은 생생했다.
“세무조사 위해 검토한
기업 자료라 할지라도
조사 뒤엔 온전히 돌려보내야
그 서류에 국세청 직원이
뭔가 썼을 가능성 전혀 없어…
포스코건설 쪽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여” ■ ‘도곡동 문건’을 직접 보다 2007년 7월2일 안 전 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취임했다.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에서 승진한 것이다. 부임 한달 만인 2007년 8월 안 전 국장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벌어졌다.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과장·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보고할 게 있다’며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내민 노란 표지의 서류철 맨 첫 장 위에 도곡동 땅 3필지의 번지수가 있었고, 그 아래 중간쯤에 손으로 큼지막하게 쓴 ‘실소유주: 이명박’이라는 글씨가 있었어요.” 당시 대구국세청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1995년 포스코건설은 문제의 서울 도곡동 땅을 200억원에 매입했다. 포스코건설 쪽이 매매 관련 서류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안 전 국장은 추정한다. “서류는 철심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세무조사를 위해 검토한 기업 자료라 할지라도 조사 뒤엔 온전히 돌려보내야 하므로, 그 서류에 국세청 직원이 뭔가를 쓰진 않습니다. 포스코건설 쪽에서 (‘실소유주: 이명박’이라는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청장실에 보고하러 들어온 국장 등을 비롯해 적어도 4명이 이 서류를 함께 봤습니다.” ■ 도곡동 문건을 덮어버리다 당시 심경에 대해 안 전 국장은 “공무원 마인드였다”고 표현했다. “그 내용을 복사해 나중에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못하고, 그저 국세청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건을 (지금도) 쥐고 있었다면 이런 고초를 안 겪었겠지요.” 그는 ‘도곡동 문건’을 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국장 등에게 “어디까지 아느냐”고 물었다. “(문건이 나온) 포스코건설 사람들도 아느냐”는 질문도 했다. 조사국장 등은 “저희 세 명(은 알고 있고), 그리고 조사 직원들은 알 수도 있겠다. 그쪽(포스코건설)은 아마 모를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엔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되면 골치아플 것 같아서, (포스코 쪽도 잘 모른다는 말에)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포스코 쪽도 (문건을)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 후보의 경선이 치열할 때였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박 후보 쪽에서도 도곡동 땅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민감한 상황이었다. 이후 안 전 국장은 ‘도곡동 문건’을 포스코건설 쪽에 돌려보냈다. “‘(세무)조사 본질과 관계없으니 (포스코에)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면서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죄 안 전 국장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도곡동 문건’은 2년 만에 되살아났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은 자신의 연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연임 로비에 필요했던 것인지 한 청장이 저에게 ‘국세청 차장직을 보장해줄 테니 3억을 내라’고 제안했는데 이를 거절했어요. 그 뒤로 한 청장의 눈밖에 났습니다.” ‘3억 제안’에 대해 한 전 청장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안 전 국장은 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 초유의 강등인사를 당했다. 2008년 4월 대구국세청장에서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좌천됐고, 2009년 1월 미국 국세청 파견 대기발령을 당했다. 그 배경에 ‘도곡동 문건’이 있다는 것을 안 전 국장은 알게 됐다. “2009년 6월 국세청 감찰과장이 명예퇴직 신청서를 들고 날 찾아왔습니다. ‘청와대에서 안 국장은 대통령 뒷조사를 한 사람으로 분류돼 있으니 명예퇴직을 신청하라’고 하더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 ‘무슨 소리냐, 난 대통령 뒷조사는커녕 오히려 정기세무조사 때 발견된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고 표기된 서류를 문제 삼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이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을 도운 사람’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사퇴 압력에 처한 안 전 국장은 당시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도왔다’는 내용이 알려지길 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사태는 기대와 다르게 돌아갔다. “국세청 감찰 쪽 직원들과 일부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내가 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면서 상부에는 ‘안원구가 도곡동 땅 문건을 갖고 정부와 맞서려 한다’고 조작해 보고한 것 같습니다. 결국 사퇴 압박은 더 극렬해졌지요.” 나중에 그는 도곡동 문건 보고자 가운데 한 명인 장아무개 당시 대구국세청 조사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안 전 국장이 <한겨레>에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2009년 9월 이뤄진 대화에서 장 전 국장은 자신의 상관이었던 안 전 국장에게 “(도곡동 문건을) 우리 직원들이 봤죠. 그러니까 (사정기관에) 보고됐겠죠”라며 “괜히 알면, 한 사람이라도 더 알면 뭐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장 전 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런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보고자로 지목된 안아무개 당시 대구국세청 조사과장도 “(도곡동 문건을) 본 적도 없고, 보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현직에 있는 팀장급 공무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 전 국장은 “퇴직해 세무법인을 운영하는 장씨와 현직에 있는 안씨 등은 국세청에 밉보여서는 안 되는 처지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2008년 한상률 청장이 불러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자금줄
그쪽 치려면 베트남 계좌 까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내가 대통령과 일주일 한두번 독대
이번에 잘해내면 대통령에 보고
당신 명예 회복시켜주겠다 말해” ■ 비극의 결정판, 태광실업 세무조사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2008년 여름 안 전 국장은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그해 7월 말 한상률 당시 청장이 나를 불러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자금줄이다. 그쪽을 치려면 태광실업의 베트남 신발공장 계좌를 까야 하는데 협조해달라’더군요.” 안 전 국장은 베트남 국세청장이 과거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 접대한 적이 있었다. “‘박 회장이 베트남에서 국빈 대우를 받고 있어서 (태광실업) 베트남 계좌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 청장이 말했습니다. 제가 그쪽 사람들과 친분이 있으니 ‘직접 베트남에 가서 (조사에) 협조를 좀 구해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안 전 국장은 대구국세청장을 지내다 강등인사를 당해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근무중이었다. “본청 소속도 아니었고, 업무 관련도 없는 세원관리국장이라 ‘이해가 안 된다’고 반문했죠. 그러자 한 청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가 대통령과 일주일에 한두번 독대를 하고 있다. 이번에 일을 잘 해내면 대통령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해서 당신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08년 8월 한-베트남 국세청장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안 전 국장에게 “국세청장님 지시이니 환영만찬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만찬장인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두 나라 국세청장 이하 간부들 10여명이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한 청장이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반사적으로 일어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대통령과 자주 독대한다더니 대통령 전화인가’ 생각했죠. 대통령에게 말해서 내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 이야기는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대통령과 의논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달여 뒤 국세청은 태광실업의 비자금 조성 계좌를 찾아내 검찰에 고발했고, 뒤이어 검찰은 이와 관련해 정·관계 인사 21명을 기소했다. “당시 태광실업은 부산에 있는 재계 600위권 밖의 회사에 불과했어요. 이 회사를 조사한다고 국세청 최정예 팀인 서울청 조사4국을 투입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박연차 게이트’의 출발은 한상률 체제의 국세청 기획조사였고 마무리는 검찰에서 한 겁니다.” “2007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조사국장·과장·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와…
맨 첫 장 위에
도곡동 땅 3필지 번지수가 있었고
그 아래 중간쯤에
손으로 큼지막하게 쓴 글씨가” ■ “나는 투사가 아니다” 관련 논란이 불거진 지 3년여 만에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안 전 국장은 “나는 투사가 아니다. 폭로나 하는 사람으로 비쳐질까 지금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검찰에 긴급체포된 직후 20일 동안 접견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후 최종 판결까지 1년6개월이 걸렸죠. 그 기간을 포함해 모두 2년 동안 감옥에 있었습니다.” 진실을 밝힐 기회가 애초부터 없었다는 뜻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가 저 대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자극적 표현과 문구로 기사화됐을 뿐, 검찰의 왜곡 정보를 바로잡는 방향으로 보도되진 않았습니다.” 그는 오는 5일 <잃어버린 퍼즐>을 출간한다. “영문도 모르고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간 내 운명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알리고 싶습니다. 제 사례는 이명박 정부의 비리 가운데 일부분이겠지만, 정권이 어떻게 바뀌든 진실은 모두 밝혀질 겁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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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서류에 국세청 직원이
뭔가 썼을 가능성 전혀 없어…
포스코건설 쪽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여” ■ ‘도곡동 문건’을 직접 보다 2007년 7월2일 안 전 국장은 대구지방국세청장에 취임했다.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에서 승진한 것이다. 부임 한달 만인 2007년 8월 안 전 국장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벌어졌다. “(대구지방국세청) 조사국장·과장·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보고할 게 있다’며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내민 노란 표지의 서류철 맨 첫 장 위에 도곡동 땅 3필지의 번지수가 있었고, 그 아래 중간쯤에 손으로 큼지막하게 쓴 ‘실소유주: 이명박’이라는 글씨가 있었어요.” 당시 대구국세청은 포스코건설에 대한 정기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1995년 포스코건설은 문제의 서울 도곡동 땅을 200억원에 매입했다. 포스코건설 쪽이 매매 관련 서류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안 전 국장은 추정한다. “서류는 철심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세무조사를 위해 검토한 기업 자료라 할지라도 조사 뒤엔 온전히 돌려보내야 하므로, 그 서류에 국세청 직원이 뭔가를 쓰진 않습니다. 포스코건설 쪽에서 (‘실소유주: 이명박’이라는 글을)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청장실에 보고하러 들어온 국장 등을 비롯해 적어도 4명이 이 서류를 함께 봤습니다.” ■ 도곡동 문건을 덮어버리다 당시 심경에 대해 안 전 국장은 “공무원 마인드였다”고 표현했다. “그 내용을 복사해 나중에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못하고, 그저 국세청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건을 (지금도) 쥐고 있었다면 이런 고초를 안 겪었겠지요.” 그는 ‘도곡동 문건’을 덮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사국장 등에게 “어디까지 아느냐”고 물었다. “(문건이 나온) 포스코건설 사람들도 아느냐”는 질문도 했다. 조사국장 등은 “저희 세 명(은 알고 있고), 그리고 조사 직원들은 알 수도 있겠다. 그쪽(포스코건설)은 아마 모를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엔 한 명이라도 더 알게 되면 골치아플 것 같아서, (포스코 쪽도 잘 모른다는 말에)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포스코 쪽도 (문건을)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두 대선 후보의 경선이 치열할 때였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박 후보 쪽에서도 도곡동 땅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민감한 상황이었다. 이후 안 전 국장은 ‘도곡동 문건’을 포스코건설 쪽에 돌려보냈다. “‘(세무)조사 본질과 관계없으니 (포스코에) 돌려보내라’고 지시하면서 ‘보안 유지를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본 죄 안 전 국장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도곡동 문건’은 2년 만에 되살아났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당시 한상률 국세청장은 자신의 연임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연임 로비에 필요했던 것인지 한 청장이 저에게 ‘국세청 차장직을 보장해줄 테니 3억을 내라’고 제안했는데 이를 거절했어요. 그 뒤로 한 청장의 눈밖에 났습니다.” ‘3억 제안’에 대해 한 전 청장은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안 전 국장은 정부 출범 직후 국세청 초유의 강등인사를 당했다. 2008년 4월 대구국세청장에서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좌천됐고, 2009년 1월 미국 국세청 파견 대기발령을 당했다. 그 배경에 ‘도곡동 문건’이 있다는 것을 안 전 국장은 알게 됐다. “2009년 6월 국세청 감찰과장이 명예퇴직 신청서를 들고 날 찾아왔습니다. ‘청와대에서 안 국장은 대통령 뒷조사를 한 사람으로 분류돼 있으니 명예퇴직을 신청하라’고 하더군요. 하도 어이가 없어 ‘무슨 소리냐, 난 대통령 뒷조사는커녕 오히려 정기세무조사 때 발견된 ‘도곡동 땅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고 표기된 서류를 문제 삼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이 후보가 대통령 되는 것을 도운 사람’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사퇴 압력에 처한 안 전 국장은 당시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도왔다’는 내용이 알려지길 원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사태는 기대와 다르게 돌아갔다. “국세청 감찰 쪽 직원들과 일부 사정기관 관계자들이 내가 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면서 상부에는 ‘안원구가 도곡동 땅 문건을 갖고 정부와 맞서려 한다’고 조작해 보고한 것 같습니다. 결국 사퇴 압박은 더 극렬해졌지요.” 나중에 그는 도곡동 문건 보고자 가운데 한 명인 장아무개 당시 대구국세청 조사국장과 대화를 나눴다. 안 전 국장이 <한겨레>에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2009년 9월 이뤄진 대화에서 장 전 국장은 자신의 상관이었던 안 전 국장에게 “(도곡동 문건을) 우리 직원들이 봤죠. 그러니까 (사정기관에) 보고됐겠죠”라며 “괜히 알면, 한 사람이라도 더 알면 뭐하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장 전 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그런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보고자로 지목된 안아무개 당시 대구국세청 조사과장도 “(도곡동 문건을) 본 적도 없고, 보고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현직에 있는 팀장급 공무원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안 전 국장은 “퇴직해 세무법인을 운영하는 장씨와 현직에 있는 안씨 등은 국세청에 밉보여서는 안 되는 처지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2008년 한상률 청장이 불러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자금줄
그쪽 치려면 베트남 계좌 까야…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내가 대통령과 일주일 한두번 독대
이번에 잘해내면 대통령에 보고
당신 명예 회복시켜주겠다 말해” ■ 비극의 결정판, 태광실업 세무조사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2008년 여름 안 전 국장은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그해 7월 말 한상률 당시 청장이 나를 불러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자금줄이다. 그쪽을 치려면 태광실업의 베트남 신발공장 계좌를 까야 하는데 협조해달라’더군요.” 안 전 국장은 베트남 국세청장이 과거 한국을 방문했을 때 직접 만나 접대한 적이 있었다. “‘박 회장이 베트남에서 국빈 대우를 받고 있어서 (태광실업) 베트남 계좌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 청장이 말했습니다. 제가 그쪽 사람들과 친분이 있으니 ‘직접 베트남에 가서 (조사에) 협조를 좀 구해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안 전 국장은 대구국세청장을 지내다 강등인사를 당해 서울국세청 세원관리국장으로 근무중이었다. “본청 소속도 아니었고, 업무 관련도 없는 세원관리국장이라 ‘이해가 안 된다’고 반문했죠. 그러자 한 청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가 대통령과 일주일에 한두번 독대를 하고 있다. 이번에 일을 잘 해내면 대통령에게 조사 결과를 보고해서 당신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2008년 8월 한-베트남 국세청장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안 전 국장에게 “국세청장님 지시이니 환영만찬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만찬장인 서울 중구 필동 ‘한국의 집’에서 두 나라 국세청장 이하 간부들 10여명이 폭탄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한 청장이 자신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반사적으로 일어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어요. ‘대통령과 자주 독대한다더니 대통령 전화인가’ 생각했죠. 대통령에게 말해서 내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 이야기는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대통령과 의논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한달여 뒤 국세청은 태광실업의 비자금 조성 계좌를 찾아내 검찰에 고발했고, 뒤이어 검찰은 이와 관련해 정·관계 인사 21명을 기소했다. “당시 태광실업은 부산에 있는 재계 600위권 밖의 회사에 불과했어요. 이 회사를 조사한다고 국세청 최정예 팀인 서울청 조사4국을 투입했습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박연차 게이트’의 출발은 한상률 체제의 국세청 기획조사였고 마무리는 검찰에서 한 겁니다.” “2007년 포스코건설 세무조사
조사국장·과장·팀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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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 중간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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