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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잘려도 싸운다…그런데 좀 피곤하다”

등록 2012-10-19 21:03수정 2012-10-20 10:19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회동’으로 정국의 한복판에 서게 된 <부산일보> 편집국에서 지난 18일 기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회동’으로 정국의 한복판에 서게 된 <부산일보> 편집국에서 지난 18일 기자들이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있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부산일보 내부 분위기
언론 독립사수 공감대 속에
긴 투쟁으로 피로감 겹쳐
“지금이 경영간섭 벗어날 기회”
“회사의 생존도 고려할 필요”
비밀 매각 논의 드러나자
사내 게시판서 뜨거운 공방

강경-온건파 후보 대결한
노조위원장 선거도 승부 못내
다음주 결선투표로 넘어가

“타닥타닥….”

지난 16일 오후 4시, 데스크 등 내근자 몇 명만 남은 <부산일보> 편집국에선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었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의 비밀회동’ 보도(<한겨레> 10월13일치 1·3면) 이후 대선 정국의 한가운데 섰지만, 이날 부산일보 편집국 풍경은 여느 신문사의 평일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폭풍의 눈’ 속 같은 고요다. 송대성 정치부장은 그 시각, 출입처에 나가 있는 기자들이 보내온 보고들을 취합하며 다음날 기사 계획을 정리하고 있었다. “월급도 안 받고 새벽 6시부터 나와 자원봉사하고 있어요.” 송 부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회사의 부당한 인사에 맞서고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한 것이다.

“민주화 기여” 역사적 자부심과 박근혜
그는 지난 8월 회사로부터 6개월 ‘정직’ 징계를 받았다. 정수장학회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쓴 대가로 지난 7월 부장급 인사에서 국제팀장으로 발령이 났는데 인사 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다. 부서원들의 휴가·출장 등 정치부장으로서의 결재권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그는 여전히 정시에 출근해 정치부 기자들과 함께 신문을 만들고 있다. “편집권 독립을 침해한 부당한 인사인데 평상시처럼 일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송 부장이 말했다. 같은 이유로 함께 징계를 받은 이상민 사회부장도 사회부 책상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의 징계 당시 편집국의 부·팀장, 평기자 대부분이 부당인사 거부에 동참했던 터라, 이들이 부장 자리를 지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부산일보는 ‘지분 매각 꼼수 정수장학회 고발’이란 1면 머리기사를 비롯해 이날 3·4면을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문화방송 지분 매각 기도를 비판하는 기사들로 채웠다. 지난 13일부터 사흘째 정수장학회 얘기가 3개면에 전진배치된 셈이다. 지난 7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연재 기획물 ‘정수장학회를 말한다’ 게재 이후 특별한 동력을 찾지 못했던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이슈 제기에 다시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쪽에선 지난해 11월30일처럼 윤전기를 세우는 무리수를 두지 않고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다. 하지만 두 부장의 정직이 끝나면 ‘면직’(사실상 해고)이라는 추가 징계 수순을 밟게 될 거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이틀 뒤인 지난 18일 부산일보 경영진은 대기발령 6개월이 끝난 이정호 편집국장을 19일자로 해고 조처했다. “이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죠. 부장이 흔들리면 후배 기자들까지 무너지니까요. 우리의 싸움이 독립 언론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라는 걸 사람들은 알아줄 겁니다.” 이상민 사회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산일보의 지면은 정수장학회의 지나친 경영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생존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몸부림인 동시에 ‘부산일보가 민주화에 공헌해왔다’는 부산일보 역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의 반영이기도 하다. 1960년 3·15 마산의거 때 행방불명됐던 김주열군이 주검으로 마산 앞바다에 떠 있는 사진을 신문 최초로 보도해 4·19혁명의 직접 도화선이 됐다는 점, 1988년 7월11일 언론사 최초의 파업을 통해 편집국장 추천제를 성취했다는 점은 부산일보의 자부심이다. 편집국의 한 중견기자는 “우리나라에서 사주에 대해, 소유구조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언론은 부산일보가 유일하다”며 “해직되는 한이 있어도 이런 자존심을 굽힐 수 없다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고집은 부끄러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부산일보는 1962년 5·16장학회(뒤에 정수장학회로 개칭)에 강제 헌납된 뒤,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정수장학회 이사장(1995~2005년)을 지낸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천막당사’를 이끌 당시 겪었던 중립성 논란은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부산일보는 2004년 총선 당시 ‘첫 부녀 당수’ ‘제1당 첫 여성 당수’ ‘39년 만의 여성 당수’ ‘박다르크’(박근혜+잔다르크) 같은 미사여구성 표현을 쓰거나, ‘아버지 묘소 참배 눈시울’ 등 동정심을 자극하는 보도를 해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으로부터 ‘박근혜 띄우기’로 대표되는 편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호진 노조위원장은 “당시 부끄러워 취재를 다닐 수가 없다는 기자들이 많았다”며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경영진을 선임할 수 있는 전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는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 속에 2006년부터 사장후보추천제 도입을 비롯한 정수장학회 사회반환 노력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편집-업무 직군간 시각차 벌어져
하지만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산일보 매각 논의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사내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06년부터 노조의 투쟁이 큰 성과 없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부산일보의 최근 매출액이 450여억원까지 줄어 2002년 호황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데 따른 위기감이다. 이 과정에서 벌어졌던 구조조정은 구성원들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현 노조 관계자는 “오랜 투쟁에 따른 피로감 속에, 투쟁 과정 속에서 편집 직군과 업무 직군 사이의 시각 차이도 크게 벌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한겨레>의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보도 이후, 부산일보 사내게시판은 휴무일인 지난 13일에도 뜨거운 격론이 벌어졌다는 후문이다. 게시판에는 ‘노조가 회사 문제를 정치 문제로 비화시킨 것이 결국 매각 논의만 부추긴 꼴이 됐다’는 주장과 ‘정수장학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만큼, 본격적으로 편집권 독립과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문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라 올라오면서 격하게 맞부딪치는 양상이란다.

이와 관련해 한 직원은 “친여 성향이 강한 보수적인 부산에서, 노조의 강성 투쟁이 부산일보의 입지만 더욱 좁혀놨다”며 “편집권 독립도 좋지만 회사 생존을 위해 타협적으로 문제를 풀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편집국의 한 기자는 “젊은 기자들 사이에선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들도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사설을 쓰는 마당에, 우리 사설은 왜 침묵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정수장학회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정치적 꼼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부산일보가 이대로 굴복한다면 누가 부산일보에 신뢰성을 보이겠느냐”고도 했다.

부산일보의 불확실한 미래와 언론의 독립이라는 정치적 올바름 사이에서 갈등하는 양상이다. 구성원들의 복잡한 심경은 지난 18일 치러진 노조 선거 결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임기 2년인 이번 노조위원장 선거에는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을 주장해온 현 노조 집행부 출신 서준녕 후보와 현 노조 집행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전대식·박진국 후보가 출마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세 후보는 정수장학회가 비밀리에 부산일보 매각 작업을 벌인 것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이를 저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해법에 대해선 시각을 달리했다. 전 후보는 “10년 동안 실질임금이 삭감됐는데도, 정치투쟁과 공정보도 시비로 업무와 편집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구호만 내세운 무책임한 정치투쟁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축구 심판이 공 찼다는 얘기 들어선 안 된다”며 부산일보 내부 문제가 지면에 보도되는 데 대해 한층 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편집국장 선거를 앞당겨 일할 분위기를 만들고, 노조활동이 지면에 보도되는 일은 없게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서 후보는 “(최근 보도로) 정수장학회의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그 결실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재단에 부산일보 사장의 당연직 이사 보장, 경영간섭 배제를 비롯해 우리사주 지분 인수 등 적극적 방안을 찾겠다”고 설득했다.

시민사회의 장학회 사회반환 운동은 탄력
개표 결과는 박 후보 35표, 전 후보가 61표, 서 후보가 89표. 현 집행부의 노선을 이어받는 서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첫 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 또한 적중했다. 이에 따라 전 후보와 서 후보는 부산일보의 향후 행보를 두고 오는 25일 결선투표에서 맞붙게 됐다.

정수장학회로부터 ‘제2의 편집권 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산일보 사옥에 ‘독자가 주인입니다. 최고신문 부산일보’란 문구가 걸려 있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정수장학회로부터 ‘제2의 편집권 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산일보 사옥에 ‘독자가 주인입니다. 최고신문 부산일보’란 문구가 걸려 있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부산 시민사회단체는 <한겨레>의 보도 이후, 부산일보와 정수장학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부산일보 지분 매각과 관련해 한 언론사의 노조 관계자는 “정수장학회의 매각 시도가 박근혜 후보를 도우려는 정치적 시도와 맞물려 있다는 꼼수가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기업의 빽으로 쓰게 하겠다’는 발언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실제 매입에 나서겠느냐”며 “지분 매각 계획이 사전에 공개된 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정수장학회 문제가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과 함께 대선의 논란거리로 부각되면서, 언론 독립 문제가 묻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라고 또다른 언론사 노조 관계자가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부산일보와 함께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원 운동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지역 야권을 비롯한 53개 시민사회·언론단체로 이뤄진 정수재단반환부산시민연대는 이를 위해 지난 17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정수장학회 언론사 지분 매각 사태와 불법 대선개입 시도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한 데 이어, 26일에는 서면에서 언론문화제를 열 계획이다. 복성경 부산민언련 사무차장은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정수장학회를 설명할 때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를 따 정수장학회라고 일일이 설명해야 했는데, 이번 대화록 공개를 통해 정수장학회의 문제점이 부각돼 반환 운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필립 이사장과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이 도모했던 지분 매각 발표 ‘디데이’(19일)는 조용히 지나갔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조만간 입장을 밝히겠다”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어떤 말을 꺼내 놓을까. 다음주께 치러질 노조위원장 결선투표에서 부산일보 사원들은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가. ‘독자가 주인입니다. 최고신문 부산일보.’ 떠나는 길, 뒤돌아본 부산일보 건물 앞에 커다랗게 걸린 글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부산/이정애 남종영 기자 hongbyul@hani.co.kr

[관련 영상]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은 사퇴할까?(김뉴타 1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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