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특검수사 발표와 관련한 입장 표명에 앞서 브리핑실 연단 뒤쪽에서 생방송 중계를 준비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터 매입을 둘러싼 의혹은 결국 특별검사의 수사를 통해서야 일부 실체를 드러냈다. 이 대통령 일가가 불법 증여를 시도했고 사저 터 매입대금의 일부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 썼다. 이 대통령 일가는 검찰의 수사는 어렵지 않게 피했지만, 특검의 칼날 앞에서는 일정 부분 치부를 드러내야 했다. 14일 특검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범죄’를 재구성했다.
■ 경호동 예산 40억여원 다 쓰기로 모의 2010년 2월,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은 이 대통령에게 퇴임 뒤 대통령 사저를 지킬 경호동 신축 사업을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경호시설뿐만 아니라 사저 터까지 전반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김 처장은 퇴직이 예정된 경호처 직원 김태환씨를 특별보좌관으로 특채해 사저·경호 부지 매입을 맡겼다. 김 보좌관은 육사 34기 출신으로 2000년부터 경호처에서 근무했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뒤 사저 건립 작업을 맡았던 경력이 있었다.
김 처장과 김 보좌관은 후보지 12곳을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내곡동이 최종 낙점됐다. 이 대통령이 직접 땅을 둘러보고 ‘오케이’ 한 곳이었다. 이들은 땅주인 유아무개씨와 협상에 들어갔다. 유씨가 매매대금으로 부른 60억원보다 감정평가액(41억~43억원)이 훨씬 적게 나오자 감정평가기관에 평가액을 높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유씨와 가격협상이 거의 성사되자 이들은 경호동 부지 매입용으로 책정된 예산 40억원뿐 아니라 예비비 전액을 모두 매입대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2011년 4월 이 대통령에게는 “내곡동 땅 140평(463㎡)을 사저 부지로 할당하겠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이 이를 승인했다.
이광범 특별검사(가운데)와 팀원들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을 수사한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비싼 땅 시형씨에게 넘기고 계약서 재작성 김 보좌관은 2011년 5월, 땅주인 유씨와 54억원에 이 땅을 매매하기로 합의했다. 사저와 경호동 부지를 통째로 매입했으니, 이 대통령 일가가 부담할 땅값과 국가가 부담할 땅값을 나눠야 했다. 감정평가기관은 경호동 터를 25억여원, 사저 터를 15억9000여만원으로 평가했다. 땅 전체 매입가 54억원에 맞춰 환산하면 경호동 터는 33억여원, 사저 터는 20억9000여만원이 된다.
그러나 이미 경호동 예산으로 받아놓은 40억원과 예비비를 모두 쓰기로 결정한 김 전 처장 등은 경호동 터를 42억8000만원, 이 대통령 일가가 부담해야 할 몫을 11억2000만원으로 조정했다. 이 대통령 일가가 부담해야 할 9억여원을 국가예산으로 전가한 것이다.
2011년 5월25일 이런 내용으로 유씨와 계약서를 썼지만, 계약 이후에도 대통령 일가에 이익을 안겨주려는 작업은 계속됐다. 내곡동 땅에서 시세가 가장 높은 20-17번지의 대통령 일가 지분을 283㎡(85.8평)에서 330㎡(100평)로 늘렸다. 대신 지목이 밭이어서 상대적으로 시세가 싼 시형씨의 20-36번지 지분 50㎡(15평)는 경호처로 넘겼다. 이들은 이렇게 지번별 공유지분을 조정하는 내용으로 6월20일 매매 계약서를 다시 썼다.
■ 명의신탁 피하려다 ‘증여’ 자백 이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는 수사만료 전날인 13일 특검에 보내온 서면진술서에서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사저부지를 아들 명의로 구입하려고 했다’고 실토했다.
경호처 관계자들은 특검 조사에서 자신들이 “사저 부지 명의를 이시형으로 하자”고 건의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김윤옥씨는 또 서면진술서에서 자신의 서울 논현동 자택 부지를 담보로 이시형씨가 대출받은 6억원에 대해 “아들이 이를 변제하지 못하면 논현동 자택 부지를 매각하는 방법으로 변제할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6억원을 증여할 의도가 있었음을 자인한 것이다. 특검은 “평소 시형씨가 김 여사로부터 차량구입비, 용돈, 생활비 등을 지원받아온 점 등에 비춰, 시형씨는 김 여사로부터 매입자금을 증여받아 내곡동 사저 부지의 소유권을 취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결론내렸다.
내곡동 땅을 사면서 아들의 명의를 동원한 행위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한 것이 되자, 이에 대해 해명을 하려다 결국 증여의 의도가 있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특검팀은 “김 여사가 이런 내용을 이 대통령과 상의했는지 등은 서면진술서에 담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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