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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죽음을 잘라내고 희망의 가위질

등록 2012-12-27 20:05수정 2012-12-28 09:50

‘노숙인 저축왕’ 김창순씨
잘나가던 이발사에서 나락으로
3번 자살시도 뒤 “살아야겠다”
서울역 뒤로하고 쉼터 입소해
머리 자르며 적금 580만원 모아
“제 가게 다시 여는 게 꿈이죠”

“노숙자 되고서 세번이나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세번째에 한강 다리 난간까지 겨우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요. ‘죽을 용기로 못 살겠냐’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군요.”

노숙인 김창순(63·사진)씨가 27일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1970~80년대 직원 12명에게 월급을 주고 한달 600만원까지 벌던 이발사였다. 마흔살 무렵부터 운명이 바뀌었다. 자식은 생기지 않았고, 아내와 이혼했고, 가게는 기울고, 2007년 당뇨로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됐다. 가위를 쥘 수 없으니 줄지어 쳐들어오는 비극도 자를 수 없다. 위자료를 주고 남은 재산 1억원을 한달 300만원 넘게 드는 병원비로 소진했다.

2008년 이발사 김씨는 서울역 노숙자가 됐다. “아는 사람 만날까 못 돌아다녔다”던 이가 공원, 지하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고장난 팔을 내밀었다. “구걸을 했습니다. 추워서 이러다 죽겠다 싶기도 하데요.”

술을 나눠 마시던 노숙자가 ‘양평에 가면 노숙자한테 밥도 주고 병원도 보내주는데, 왜 이런 데서 고생하느냐’고 말했다. 노숙 두달째였다. “그런 데가 어딨냐고 야단을 쳤더니 자기가 거기서 지내다 왔다는 겁니다.”

김씨는 서울시의 도움으로 당뇨 치료를 위해 동부시립병원에 입원했고, 이후 시립 양평쉼터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우울증이 닥쳤다. “사람들이 옆으로 오기만 해도 싫었습니다. 과거만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살기 싫고.… 허허.” 김씨는 웃었다.

다리 아래 강물에 비친 어머니를 만난 뒤 김씨는 쉼터로 돌아와 “노숙인들 이발을 해주고 싶다”고 제안했다. 2008년 10월 시설 마당에 ‘천막 이발관’을 차렸고, 이후 공동작업장 한켠으로 확장했다. 일하는 노숙인들에게 3000원을 받았다.

시설에 있는 130여명 가운데 공공근로나 일용노동 등으로 돈 버는 이는 40명쯤이다. 그러니 저축을 하는 이도 40여명이다. 그 가운데 김씨가 1등이다. 3000원 이발비를 모으고 날품도 팔며 주택청약저축 80만원(한달 2만원씩 40개월), 자유적금 580만원을 쌓았다.

“하루 5~6명 손님 가운데 절반은 공짭니다. 비슷한 여건의 식구들을 돕다 보니 마음도 편해지고요. 마음이 편해지니 일 시작하고 두달쯤 지나 지팡이도 놓게 됐고, 마비됐던 오른손도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2012년 노숙인 김씨는 서울시가 선정한 ‘저축왕’이 됐다. 인생 3막 마지막 꿈은 제 이발관을 다시 여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내 복지시설 노숙인 3000여명 가운데 70명을 ‘노숙인 저축왕’으로 뽑았다. 이들이 지난 8개월 동안 번 돈은 5억3000만원, 저축한 돈은 3억6000만원이다. 내년 ‘희망플러스 통장 가입 대상자’로 선정되면, 자신이 저축한 액수만큼 시 지원금도 함께 적금되는 ‘마법’을 보게 된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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