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금 마련을 위해 일본 정부가 발행한 채권. 자료제공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100여명 명단·내역 발표
일제 때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파 인사들과 친일 단체들의 명단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이사장 조문기)는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부터 해방 때까지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 인사 100여명과 친일단체 명단, 헌납 내역 등을 12일 공개했다. 이 명단에는 인촌 김성수의 동생인 김연수 당시 경성방직 사장 등 거물급 친일파들을 비롯해 △문명기·최창학 등 광산 부호 △민영휘(휘문고 설립자) 일가 등 일제 귀족 가문 △경남 진주부의 정태석 등 대지주 등이 포함돼 있다. 금액으로 보면 손창식 중추원 참의가 비행기 4대 값에 해당하는 40만원을 냈고, 임훈, 김용섭, 김연수, 이영구 등이 10만원 이상씩을 냈다. 명단에는 1만원 이상씩을 낸 창씨개명 조선인들이 20여명 포함됐지만, 연구소는 이들의 한국 이름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명기가 기증한 비행기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기념엽서. 자료제공 민족문제연구소
1937년 조선군 사령부 애국부장이 발행한 헌납 비행기 기부금 1백원에 대한 감사장. 자료제공 민족문제연구소
자료를 보면,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 경남 진주에서는 친일파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이 벌어져 ‘경남진주부호’와 ‘경남진양군호’ 두 대가 기부됐다. 또 진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이름을 붙인 비행기 헌납 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일제는 이 비행기를 학교 상공에 띄우며 경축했다. 종교계의 비행기 헌납도 드러났다. 해방 뒤 2대 국회의원과 동국대 재단이사장, 조계종 중앙총무원장까지 지낸 승려 이종욱은 사찰과 주지들을 독려해 성금을 거둬,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5대를 일제에 바쳤다. 조선예수교장로교도 1941년 애국기헌납기성회를 꾸리고 해군 연습기와 애국기를 헌납했다. 김승태 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은 “당시 목사 신분이던 백낙준 전 연세대 총장이 헌납기성회 부회장으로 헌납을 주도했으며, 감리교단에서도 1944년 교회를 통폐합한 돈으로 애국기를 헌납하자는 공문을 교회에 내려보냈다”고 말했다. 연구소가 발표한 헌납 내역은 ‘만주사변 국방헌품 기념록’ ‘항공사정’ 등 일본쪽 자료들과,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조선군사령부 애국부(국방헌금 담당 부서)가 발행하던 잡지 <애국>, <부산일보> 등을 통해 확인됐다. 한 일본 네티즌이 운영하는 ‘육군 애국기 헌납’ 전문 사이트도 연구소의 작업에 도움이 됐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은 “<매일신보> 등의 검토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아 비행기 헌납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았다”며 “개인 헌납한 ‘큰손’들은 특정 제품의 독점 판매권 등 이권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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