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왼쪽)과 이근희 삼성 회장(오른쪽)
차명주식 ‘몰래 상속’ 인정하면서도…현재 재산과 무관 판단
‘삼성가 유산싸움’ 이건희 회장 완승
법원 ‘분할협의 없었다’ 판단에도
그뒤 늘어난 주식·이익배당과 달라 애초 상속 39만주만 청구 가능 인정
이마저도 ‘제척기간 지났다’ 각하 청구금액만 4조원대에 이르고, 소송 결과에 따라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었던 삼성가 유산 소송의 1심 결과는 이건희(71) 삼성 회장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삼성그룹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건희 회장과 일찌감치 경영에서 배제된 이맹희(82) 전 제일비료 회장 등 다른 형제들 사이의 유산 다툼은 재판이 열리기 전의 감정싸움으로 시작해 법정에서의 법리 공방까지 치열하게 펼쳐졌다. 지난해 2월 이맹희 전 회장은 “선대 회장의 삼성생명·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다른 형제들 몰래 상속했으니 이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고, 이후 다른 형제들도 소송에 동참했다. 지난해 5월 첫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양쪽은 장외 설전부터 벌였다. 이건희 회장은 맏형인 이맹희 전 회장을 ‘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라고 표현하며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맹희 전 회장은 아들이 운영하는 씨제이(CJ)그룹을 통해 “건희가 어린애 같은 발언을 하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 탐욕이 소송을 초래했다”고 맞받았다.
양쪽의 감정싸움은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재판장 서창원) 심리로 열린 8차례의 재판을 통해 법리 공방으로 번졌다.
우선, 1987년 선대 회장 타계 당시와 1989년 형제들 사이에서 상속재산 분할 협의서를 작성할 때 삼성생명·삼성전자 차명주식에 관한 상속재산 분할 협의가 이뤄졌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상속재산 분할 협의에 의해 상속재산인 삼성생명·삼성전자 차명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단독으로 상속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점에선 “이건희 회장이 다른 형제들 몰래 상속했다”는 이맹희 전 회장 쪽 손을 들어준 셈이다.
다음 쟁점은 선대 회장 타계 당시 존재했던 차명주식에서 여러차례 명의변경과 매매를 거친 뒤 현재 이건희 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상속회복 청구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이맹희 전 회장 쪽은 “상속재산을 바탕으로 현재 주식이 마련됐으므로 지금 갖고 있는 재산에 대해서도 (유산 상속을)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속재산이 처분되거나 사라진 경우 그 대가나 그 대가로 취득한 다른 물건 또는 권리를 상속재산으로 평가해 상속회복 청구의 목적물에 포함시키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즉, 상속회복 청구는 상속된 재산 그 자체에 대해서만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라 재판부는 △이맹희 전 회장 쪽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특검 수사기록을 통해 밝혀낸 삼성전자 차명주식 △대부분의 삼성생명 차명주식 △이 주식들을 바탕으로 이건희 회장이 받아간 이익배당금 등은 상속회복 청구 소송을 통해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없는 재산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이병철 선대 회장이 1987년 타계 당시 보유하고 있었던 삼성생명 주식 5만주(액면분할 된 뒤 50만주, 이 가운데 원고들이 청구할 수 있는 주식은 39만여주)만 이맹희 전 회장 쪽이 상속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상속재산이라고 봤다.
하지만 이마저도 재판부는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제척기간이란 부당하게 상속받은 사람에게 그 재산을 돌려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기한으로, 상속권을 침해당한 시점으로부터 10년으로 규정돼 있다. 이맹희 전 회장 쪽은 이건희 회장에 의해 상속권을 침해당한 시점을 2008년으로 봤다. 이때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을 자신의 명의로 개서했기 때문이다. 반면 이건희 회장 쪽은 상속권 침해가 일어났다면 1987년 선대 회장이 타계한 시점부터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양쪽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1988년 이건희 회장이 차명주식의 주주로서 주주총회에서 의결권과 이익배당청구권을 행사한 때를 상속권 침해 시점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제척기간은 1998년에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이날 선고에 앞서 재판장은 “양쪽의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선대 회장의 유지에는 일가가 화합해서 화목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일가가 모두 화합해서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맹희 전 회장의 변호인은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판결문을 검토해 보고 의뢰인과 상의해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삼성가의 유산 다툼은 재판장의 뜻과는 달리 항소심 법정으로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삼성쪽 ‘당연한 결과’ CJ쪽 ‘예상 못했다’ 소송가액 4조원대에 이르는 ‘세기의 소송’에서 승소한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이나 패소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아들 이재현 회장의 씨제이(CJ)그룹이나 모두 말을 아꼈다. 소송의 당사자는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지 그룹은 무관하다는 원칙 때문이다. 삼성과 씨제이그룹의 여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소송에 대한 입장은 없다. 법률대리인의 발언이 공식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크게 엇갈렸다. 삼성그룹 쪽은 소송이 시작된 이후 줄곧 밝혀온대로 ‘이 회장의 승소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이었다. 다만 만의 하나 ‘일부 패소’가 있을 수 있다는 예상과 달리 ‘전부 승소’의 결과가 나온 때문인지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삼성 관계자는 “회장 개인의 소송이라 그룹 차원에서 할 말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씨제이는 예상과 너무 다른 결과에 대해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씨제이 고위관계자는 “개인간의 소송 문제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은 없다. 아마도 법률대리인 쪽에서 판결문을 받아보고 검토한 뒤에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이 정도로 완패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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