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염소유출 이어 기름탱크 폭발…6개월새 네번째 사고
91년 낙동강 페놀사건 겪고도
규제 풀어 유해업종 무분별 입주
유독물질 사업장 136곳
9급 공무원 1명이 관리
MB정부, 환경청 출장소도 없애 산단 규모 고속성장 했지만
산업안전망 구축엔 제자리걸음
많은 영세업체 인력·장비 부족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불안해서 밖에 나가는 걸 꺼림칙해한다. 주민들이 모이면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사고가 알게 모르게 많았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7일 저유소 저장탱크가 폭발해 검은 연기가 치솟았던 경북 구미시에서 만난 시민 김태형(30·자영업)씨의 말이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게 요즘 구미 시민들이 털어놓는 심정이다. 박종욱(55·산동면 임천리)씨는 “잦은 사고로 도시 이미지가 나빠져 농사지은 수확물을 외부에 팔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미에서 지난해 9월 큰 피해를 낸 구미국가산업4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의 불산(불화수소산) 누출 사고 이후에도 유해화학물질 누출 등 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이달 들어서는 하루 건너 한건씩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한때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며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던 구미가 ‘사고 도시’라는 오명을 쓸 위기에 직면했다. 30~40년 전 구미는 일자리가 넘쳐나는 희망의 도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고향인 구미에 1000만㎡가 넘는 구미공단(지금의 구미국가산업단지1단지)을 조성해 동아시아 최고의 전자산업단지를 꾸밀 때만 해도 도시는 활기로 가득 찼다. 1981년 국가산업단지2단지(227만㎡)에 이어 3단지(508만㎡), 4단지(678만㎡)가 차례도 들어섰고, 현재 5단지가 조성중이다. 구미지역 전체 산업단지 면적은 3400만㎡를 웃돌아, 입주 업체만 1700여곳이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9만명에 이른다. 구미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의 메카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자리를 구하려면 구미에 가라”는 말과 함께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몰렸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고속성장하는 가운데 산업단지 면적과 입주업체 수가 몇 배가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산업안전망 구축은 뒤처졌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됐다. 1991년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러들면서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고로 안전·환경의식은 높아졌는데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미공단은 애초 1973년 한국도시바(현 ㈜케이이시)가 1호 기업으로 입주하며 전자·섬유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이어 80~90년대엔 컴퓨터·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의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덩치가 커졌고, 이들 업종 부품 생산에 필요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석유화학 등의 업체들도 대거 늘었다. 현재는 전기전자 업체 394곳에 이어 석유화학 업체도 143곳이나 있다. 유해화학물질을 연 1t 이상 다루는 종업원 30명 이상 업체만 해도 구미산업단지에 99곳이 입주해 경기도 안산 265곳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그러나 유해물질 사업장을 점검하고 단속하는 안전망 구축에는 소홀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월 정부의 공무원 기구 축소를 앞세워 대구지방환경청 구미출장소를 14년 만에 폐지한 것이 단적인 보기다. 이때 전국 환경출장소 6곳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지난 5일 ㈜구미케미칼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됐을 때도 대구에 사무실을 둔 대구지방환경청 직원들이 사고 2시간이 지나서야 공장 주변에서 염소 측정을 했다. 구미 시민들은 “염소가 공기 중으로 다 날아간 뒤 측정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난했다. 지난해 9월 휴브글로벌 불산사고 때도 1시간20분이 지나고서야 대구환경청 직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정작 구미시에서는 9급 공무원 1명이 유독물질 사업장 136곳을 거의 혼자서 도맡아 관리해야 하는 형편이다. 김동진 구미시 수질계장은 “환경부서 직원들이 단속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멧돼지 퇴치하러 산으로 가야지, 산불 끄러 가야지, 일에 묻혀 파김치가 된다”고 털어놨다. 지방자치단체 쪽의 안전 무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민선 단체장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유독물질 사업장이라도 유치하는 데 신경썼다. 불산 누출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이 입주한 구미4단지는 애초엔 첨단업종 산업만 유치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1997년 경제 위기가 닥친 뒤 구미시의 건의를 받아들인 정부가 업종 제한을 풀면서 유해업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5일 염소가 누출된 1단지 구미케미칼에서도 작업자들이 송풍기 점검을 빠뜨렸고 방호복 등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불산·질산·초산 혼합액 유출 사고가 난 2단지 ㈜엘지실트론은 16시간 넘게 누출 사고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주민들의 의구심을 키웠다. 20여년 동안 구미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은 “유독물질을 다루는 기업들이 대부분 10~20명 규모의 작은 기업이 많아 경비 절감 차원에서 안전분야에 인력배치를 하지 않는 점도 사고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구미 불산 사고 때 민관합동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유독물질 전문가 한광용 박사는 “이번 기회에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사고는 이어질 수 있다. 단속 업무를 하는 환경부에만 맡겨놓지 말고 모든 관련 부처가 매달려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미/구대선 김일우 기자, 김정수 선임기자 sunnyk@hani.co.kr
규제 풀어 유해업종 무분별 입주
유독물질 사업장 136곳
9급 공무원 1명이 관리
MB정부, 환경청 출장소도 없애 산단 규모 고속성장 했지만
산업안전망 구축엔 제자리걸음
많은 영세업체 인력·장비 부족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불안해서 밖에 나가는 걸 꺼림칙해한다. 주민들이 모이면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사고가 알게 모르게 많았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이들도 있다.” 7일 저유소 저장탱크가 폭발해 검은 연기가 치솟았던 경북 구미시에서 만난 시민 김태형(30·자영업)씨의 말이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게 요즘 구미 시민들이 털어놓는 심정이다. 박종욱(55·산동면 임천리)씨는 “잦은 사고로 도시 이미지가 나빠져 농사지은 수확물을 외부에 팔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구미에서 지난해 9월 큰 피해를 낸 구미국가산업4단지 ㈜휴브글로벌 공장의 불산(불화수소산) 누출 사고 이후에도 유해화학물질 누출 등 사고가 끊이지 않은 탓이다. 이달 들어서는 하루 건너 한건씩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다. 한때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며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던 구미가 ‘사고 도시’라는 오명을 쓸 위기에 직면했다. 30~40년 전 구미는 일자리가 넘쳐나는 희망의 도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고향인 구미에 1000만㎡가 넘는 구미공단(지금의 구미국가산업단지1단지)을 조성해 동아시아 최고의 전자산업단지를 꾸밀 때만 해도 도시는 활기로 가득 찼다. 1981년 국가산업단지2단지(227만㎡)에 이어 3단지(508만㎡), 4단지(678만㎡)가 차례도 들어섰고, 현재 5단지가 조성중이다. 구미지역 전체 산업단지 면적은 3400만㎡를 웃돌아, 입주 업체만 1700여곳이고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9만명에 이른다. 구미는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의 메카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자리를 구하려면 구미에 가라”는 말과 함께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몰렸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고속성장하는 가운데 산업단지 면적과 입주업체 수가 몇 배가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산업안전망 구축은 뒤처졌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게 됐다. 1991년 두산전자 구미공장에서 페놀이 낙동강으로 흘러들면서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고로 안전·환경의식은 높아졌는데도,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미공단은 애초 1973년 한국도시바(현 ㈜케이이시)가 1호 기업으로 입주하며 전자·섬유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이어 80~90년대엔 컴퓨터·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의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덩치가 커졌고, 이들 업종 부품 생산에 필요한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석유화학 등의 업체들도 대거 늘었다. 현재는 전기전자 업체 394곳에 이어 석유화학 업체도 143곳이나 있다. 유해화학물질을 연 1t 이상 다루는 종업원 30명 이상 업체만 해도 구미산업단지에 99곳이 입주해 경기도 안산 265곳에 이어 두번째로 많다. 그러나 유해물질 사업장을 점검하고 단속하는 안전망 구축에는 소홀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2월 정부의 공무원 기구 축소를 앞세워 대구지방환경청 구미출장소를 14년 만에 폐지한 것이 단적인 보기다. 이때 전국 환경출장소 6곳이 사라졌다. 이 때문에 지난 5일 ㈜구미케미칼에서 염소가스가 누출됐을 때도 대구에 사무실을 둔 대구지방환경청 직원들이 사고 2시간이 지나서야 공장 주변에서 염소 측정을 했다. 구미 시민들은 “염소가 공기 중으로 다 날아간 뒤 측정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난했다. 지난해 9월 휴브글로벌 불산사고 때도 1시간20분이 지나고서야 대구환경청 직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정작 구미시에서는 9급 공무원 1명이 유독물질 사업장 136곳을 거의 혼자서 도맡아 관리해야 하는 형편이다. 김동진 구미시 수질계장은 “환경부서 직원들이 단속 업무만 하는 게 아니라 멧돼지 퇴치하러 산으로 가야지, 산불 끄러 가야지, 일에 묻혀 파김치가 된다”고 털어놨다. 지방자치단체 쪽의 안전 무관심도 빼놓을 수 없다. 민선 단체장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명분으로 유독물질 사업장이라도 유치하는 데 신경썼다. 불산 누출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이 입주한 구미4단지는 애초엔 첨단업종 산업만 유치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1997년 경제 위기가 닥친 뒤 구미시의 건의를 받아들인 정부가 업종 제한을 풀면서 유해업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예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5일 염소가 누출된 1단지 구미케미칼에서도 작업자들이 송풍기 점검을 빠뜨렸고 방호복 등 안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불산·질산·초산 혼합액 유출 사고가 난 2단지 ㈜엘지실트론은 16시간 넘게 누출 사고를 당국에 신고하지 않아 주민들의 의구심을 키웠다. 20여년 동안 구미에서 시민운동을 해온 구미경실련 조근래 사무국장은 “유독물질을 다루는 기업들이 대부분 10~20명 규모의 작은 기업이 많아 경비 절감 차원에서 안전분야에 인력배치를 하지 않는 점도 사고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구미 불산 사고 때 민관합동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유독물질 전문가 한광용 박사는 “이번 기회에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사고는 이어질 수 있다. 단속 업무를 하는 환경부에만 맡겨놓지 말고 모든 관련 부처가 매달려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구미/구대선 김일우 기자, 김정수 선임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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