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 공예가 조병묵(71)씨
오송 호수공원에 솟대 세운 공예가 조병묵씨
5월 뷰티박람회 맞춰 28점 전시
교사퇴직뒤 17년간 푹 빠져 배워
“청계천에 솟대 숲 만드는 게 꿈”
5월 뷰티박람회 맞춰 28점 전시
교사퇴직뒤 17년간 푹 빠져 배워
“청계천에 솟대 숲 만드는 게 꿈”
충북 청원군 오송읍 연제리 호수공원에는 하늘에 멈춘 오리떼가 있다. 풍농 등을 기원하며 나무로 만든 새를 장대 위에 세운 ‘솟대’다. 늘 ‘솟대에 미쳐 사는’을 이름 앞에 붙여 말하는 솟대 공예가 조병묵(71·사진)씨가 세운 것이다. 조씨는 5월 고향인 청원 오송에서 열리는 ‘2013 오송 화장품·뷰티 세계박람회’를 앞두고 최근 자신의 솟대 작품 28점을 세웠다. 나무뿐 아니라 청동 작품 3점도 있다. 5~7m에 이르는 키다리여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솟대는 2004년 세계박물관협회가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꼽았을 만큼 세계가 인정하는 조형물이에요. 50일 뒤 개막하는 박람회 때 이곳을 찾을 수많은 세계인들에게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 작품을 자랑하려고 큼직한 솟대를 세웠죠.”
14일 낮 솟대 아래에서 그를 만났을 때, 호숫가를 산책하던 시민들이 솟대 앞에 멈춰서 연신 휴대전화 사진 셔터를 누른다. 그는 틈틈이 이곳을 찾아 솟대를 돌보고, 시민들에게 솟대를 일러주곤 한다.
“솟대는 사람과 땅, 하늘을 잇는 희망의 안테나예요. 간혹 솟대 앞에 멈춰서 손을 모으고 뭔가를 비는 이들도 있어요. 모쪼록 이곳을 찾는 이들이 솟대를 통해 꿈을 빌고, 그 꿈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는 교사였고, 우체국장이었다. 1969년 3월 충주 신명중에서 교단에 선 이래 96년 8월 음성고에서 퇴임하기까지 27년 동안 ‘사회·윤리 교사’로 살았다. <내 인생을 바꾼 아버지의 한마디> 등 교육지침서 3권도 냈다. 1996년 10월 사설 강외우체국장으로 변신했다. 집안의 권유였다. 자리만 지키는 우체국장이 아니었다. 틈만 나면 친구·이웃·단체 등을 졸라 책을 모았다. 쌈짓돈도 보탰다. 우체국장 생활 10년 만인 2005년 10월 우체국 한쪽에 6000여권을 갖춘 도서관을 열었다. “시골 아이들이 책을 통해 꿈을 키우길 바랐죠. 교단을 떠났지만 교육은 제 평생의 업이라는 생각이었죠.” 이 도서관은 지금도 마을 사랑방이다.
솟대는 인생 2막을 연 1996년 10월 공주박물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만났다.
“박물관 한켠에 삐뚤삐뚤 못생긴 솟대가 섰는데, 왠지 정화수 떠놓고 자식들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가 떠올랐어요. 그 뒤 솟대에 빠져 여기까지 왔네요.”
제천의 솟대 조각가 윤영호(68)씨에게 10여차례 찾아가 솟대를 배우는 등 전국의 내로라하는 솟대 명인들을 찾았다. 17년 동안 솟대에 빠져 지낸 그는 독특한 작품 세계로 눈길을 끌고 있다. 2008년부터는 옻칠을 가미한 작품을 내놓고 있다. 14회 전주 전통공예전국대전 특선(2009년), 아름다운문화예술인상(2012년) 등을 받았으며 지난해 충북도 명장 9호(솟대 1호)로 지정됐다.
“전국의 솟대 명인들과 함께 서울 도심 청계천에 솟대 숲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바쁘디바쁜 도시민과 서울을 찾는 세계인들이 솟대를 통해 잠시만이라도 여유와 희망을 떠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청주/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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