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에 오세훈 전 시장 ‘무리수’ 정황
파산 직전에 이른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해, 서울시가 도시계획위원회(도계위) 위원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서부이촌동 아파트단지까지 대규모로 ‘통합개발’하는 방안을 밀어붙인 정황이 드러났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내건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명분이었다.
14일 <한겨레>가 용산국제업무지구 자문 안건을 다룬 2007년 8월8일 도시계획위원회(위원장 최창식 행정2부시장·현 서울 중구청장) 회의록을 살펴보니, 여러 도계위 위원들은 서울시의 통합개발 방안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용적률, 사업 부진에 따른 주민 소송 가능성 등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수렁에 빠진 용산 통합개발의 위험을 예견한 셈이다.
서울시는 당시 서부이촌동 2193가구가 사는 218개동 아파트를 전면 철거하고 385%였던 용적률을 608%(조례 허용 한도)까지 대폭 올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한강부터 용산을 거쳐 남산에 이르는 조망축을 구성하기 위해 코레일의 용산차량기지 터와 아파트단지 터를 묶어 개발한다는 구상이었다. 아파트 가운데는 불과 2년 전인 2005년 준공된 아파트도 있었다. 주민 다수 동의를 확보하려면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유였다.
한 도계위 위원은 “굉장히 과감하게 용적률을 높여 주는 것인데, 도시계획위원회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다른 위원은 “거의 100만평에 대해서… 누가 봐도 5년 된 아파트 헐고…. (사업이 실패하면) 용적률을 과감하게 올려준 도시계획위원들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위원은 “608%면 나는 저런 개발계획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도계위 회의 9일 뒤인 2007년 8월17일 “용산 개발로 서울을 세계 10위 명품 수변도시로 만들겠다”며 코레일의 용산국제업무지구와 서부이촌동을 통합개발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용산 개발사업 승인 신청을 내자, 서울시는 2009년 12월2일 도계위에 심의 안건으로 올렸다. 위원들의 우려는 여전했지만, 서울시 쪽은 ‘통합개발이 가장 낫다’며 밀어붙였다. 한 위원은 “획지를 둘로 나눠 붙이거나 뗄 수 있게 해야 한다. 무조건 지정하면 주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서울시 주무 과장은 “획지를 분리하면 개발계획 자체를 다시 그려야 한다”고 답했고, 다른 도계위 위원은 “시가 의지적으로 포함시키라고 한 것”이라며 서울시 쪽을 거들면서 심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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