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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칫! 안 본다 안 봐

등록 2013-03-22 20:39수정 2013-03-22 20:44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토요판] 가족 엄마의 콤플렉스
페이스북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스스럼없이 온라인 대화를 나눌 만큼 ‘쿨’하지 못한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이 친구 맺기를 요청하면 낯선 동물을 만난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방어 자세부터 취하게 된다. 알고 지낸 사이라 해도 친구 맺기가 마냥 편한 건 아니다.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어릴 때부터 봐온 선배의 대학생 딸이 친구 요청을 해왔을 때였다.

총명하고 속이 깊어 늘 친조카처럼 예뻐한 아이지만, 내 속내를 시시콜콜 털어놓는 담벼락 글을 무방비로 보여줘도 될까. 나이든 이모한테 친구 요청을 해준 게 황송하고 고마우면서도 그간 내가 올린 글에 이상한 건 없을까 자기검열까지 해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언니, ○○가 나한테 친구 요청했어” 했더니 선배 언니는 “넌 좋겠다. 정작 나한테는 페친 의절하겠다고 경고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의 지인한테는 친구 요청을 하면서도 정작 엄마가 자기 담벼락 글을 보고 알은체를 하는 건 거북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지 들여다보려고 페이스북을 이용한다. 미국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을 쓰는 부모의 92%가 자녀와 친구 맺기를 하고 있으며 이들 중 74%가 자녀의 페이스북을 일주일에 4~5번 이상 체크한다. 자녀가 페북에서 음란물이나 이상한 사람을 접하고 있지 않은지, 사이버 왕따를 당하고 있진 않은지, 술이나 약물을 하는 건 아닌지 체크하기 위해서라는데, 자녀의 페이스북 패스워드를 알아내 모든 정보를 ‘염탐’하는 부모도 72%나 된다. 아이의 페이스북 활동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자녀 페이스북 모니터링 가이드’ 같은 지침들이 인터넷에 떠돈다. 요즘처럼 사이버 왕따며 자살 암시며 온갖 흉흉한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부모로서 수긍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이런 부모의 간섭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10대 페이스북 사용자의 3분의 1은 부모가 남긴 댓글 때문에 당혹스러웠다고 답하고, 할 수만 있다면 부모를 친구 명단에서 제거하고 싶다고 말한다. 부모들이 알아보지 못할 인터넷 약어를 개발하거나 부모 몰래 ‘텀블러’와 같은 다른 소셜미디어 사이트로 옮겨가기도 한다. ‘보호’하려는 부모와 ‘해방’되려는 자녀 사이의 추격전이다. 극단적인 경우긴 하지만 지난해 말 미국에선 딸의 인터넷과 통화내역을 트래킹한 부모가 ‘스토커’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우리 어릴 적 꽁꽁 감춰둔 일기장을 엄마가 뒤져보았을 때 우리도 그랬지. 울고불고 길길이 날뛰고…단짝 친구랑 비밀일기장 돌려쓰기를 한다고 밤마다 방문을 닫아거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맘을 다잡는다. 그래, 부모가 모르는 지들만의 대화도 필요한 거야…. 그래도 그렇지, 수백명 페북 친구들한테는 공개하면서 부모만 왕따시킬 건 뭐야? 나도 쿨한 엄마 되긴 영 글렀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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