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를 졸업한 사피(가명)는 하마터면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뻔했다. 담임선생님은 “사피는 외국인 등록번호가 없어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피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40대 불법체류 노동자 달리아(가명)의 딸이어서, 한국 국적도 비자도 없는 이른바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분류된다. 중학교까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기대 어떻게든 다닐 수 있었지만 시행령에 고등학교는 빠져 있었다.
사피를 위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나섰다. 덕분에 사피는 한 달 늦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공감이 교육부의 ‘다문화학생 학적관리 매뉴얼’을 뒤져, 부모의 불법체류와 관계없이 이주아동들도 고교 진학이 가능하다는 지침을 찾아 해당 교육청에 알렸다. 그나마 학교장이 입학을 거부하지 않아 가능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세이브더칠드런, 아시안프렌즈, 흥사단 등은 사피와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이주아동권리보장법’ 제정안을 만들어 4~5월께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 등을 통해 발의할 예정이라고 31일 밝혔다. 국내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이주아동들이 부모의 불법 체류 여부와 상관없이 귀화 허가나 영주자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명시한 법안이다.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정부는 유엔(UN) 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교육권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으면서도 이제껏 적극적 입법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국 아이들은 사실상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는 만큼 이주아동들도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미등록 이주아동은 현재 2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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