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대포차 브로커 꾐에 노숙인들 벼랑

등록 2013-04-01 20:39수정 2013-04-01 21:36

밥·술 사주고 용돈 주며 환심 산뒤
인감·등본 건네받아 대포차 개설
체납폭탄에 노숙인은 목숨 끊기도
인권단체 “사용자에 세금 부과를”
서울 서대문구의 고시원에서 사는 장덕수(가명·50)씨가 ‘그들’을 만난 건, 15년 전이다. 1998년 일자리를 잃고 종로2가에서 노숙생활을 시작할 때였다. “일자리 필요하지 않아요?” 남녀 한 쌍이 장씨에게 다가왔다. 햇볕이 뜨겁게 쏟아지던 7월이었다.

그들은 취업용 인감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 6통씩을 요구했다. 장씨는 당장 주민센터로 달려가 필요한 서류를 떼어 건넸다. 남자는 “차비나 하라”며 10만원을 쥐어줬다. 일자리를 소개받진 못했지만, ‘세상엔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5년 뒤 고시원에 둥지를 틀자, 우편물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관련한 각종 세금 고지서와 독촉장, 과태료 통지서였다. 노숙생활을 할 때는 주소가 없어 날아오지 않던 것들이었다. “나는 차가 없기 때문에 잘못 날아온 줄로만 알았다”고 장씨는 말했다. 최근 노숙인 인권단체인 ‘홈리스 행동’을 만나, 자신이 자동차 2대의 명의자란 사실과 15년 전에 만난 그들이 ‘대포차 브로커’들이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 거저 얻은 ‘10만원’의 결과는 가혹했다. 지금까지 장씨 앞으로 밀린 각종 세금과 과태료 체납금은 4800여만원이다. 장씨는 “희망이 없다”고 했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살던 최영훈(가명·51)씨는 대포차 브로커에게 자신의 명의를 내줬다가 2002년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자 2명과 공모해 대포차를 만들었다”는 것이 최씨의 죄목이다. 그의 이름이 도용된 자동차는 3대였다. 그는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터였다. 감옥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나서도 최씨에게는 자동차 할부금 5000여만원이 고스란히 남았다. 사기죄가 확정돼 파산신청도 할 수 없었다. 지난해 12월 최씨는 자신의 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들은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탓에 금전을 미끼로 한 대포차 브로커들의 유혹에 취약하다. 특히 대포차가 소득으로 잡히면서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지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공익변호사모임 ‘공감’의 차혜령 변호사는 1일 “명의도용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명의도용 범죄에 이용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용돈이나 술 등으로 꾐에 빠져 불가피하게 범죄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동자동사랑방’ 등 노숙인 인권단체들은 이날 노숙인들의 명의도용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번호판만 떼가는 서울시의 ‘대포차 근절 방안’으로는 명의를 도용당한 노숙인들이 세금·과태료 폭탄을 피할 수 없다. 세금과 과태료를 명의 대여자가 아니라 차를 사용하는 사실상 소유자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아 울컥하네…직장인 속 뒤집어질 때 1위는
‘데이터 선물하기’도 역시 남자가 여자에게 퍼주기
낙마 김종훈 한국서 뺨맞고 미국서 화풀이?
세계 최강 전투기 F-22 한반도 출격 ‘다음엔 핵항모?’
[화보] ‘벚꽃엔딩’처럼…진해 군항제 개막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