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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학교를 ‘범죄의 소굴’로 만들지 말라

등록 2013-04-19 19:11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약한 사람을 지능적으로 괴롭히고 착취하는 방법을 사회에서 배운다. 피해자의 자살로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학교와 학부모 등이 방치한 경우가 많다. 한 학생이 숨진 교실에 조화가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은 약한 사람을 지능적으로 괴롭히고 착취하는 방법을 사회에서 배운다. 피해자의 자살로 사건이 표면에 드러나지만, 학교와 학부모 등이 방치한 경우가 많다. 한 학생이 숨진 교실에 조화가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10> 학교폭력 자살사건
최상위 일진과 최하위 찐따
체계적인 착취와 괴롭힘, 학대
성적 수치심 유발하는 장난
성인 능가하는 지능적 방법들…
침묵과 쉬쉬 속에 아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다

30번이 자살하거나 전학 가면
29번, 그리고 28번, 27번
결국 누구든 피해 대상이 된다
방관자로 지내야 하는 비겁함도
아이들의 정서를 망가뜨린다

2013년 3월11일, 경북 경산에 있는 23층 아파트 옥상에서 고등학교 1학년 최아무개(15)군이 뛰어내려 사망했다. 그의 품속에서는 마구 갈겨쓴 유서가 발견되었다. 투신하기 직전에 마지막 심경을 적은 것이었다.

“… 엄마 아빠 누나 내가 이렇게 못나서 미안해… 내가 죽는 이유를 지금부터 말할게요… 2011년부터 지금 현재까지 괴롭혀 왔던 애들을 적겠습니다… 주로 시시티브이(CCTV) 없는 데나 사각지대, 있다고 해도 화질이 안 좋아 판별이 어려운 데 이런 데서 맞습니다. … 폭력, 금품갈취,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빵셔틀 등등… 마지막으로 가족에게, 집에서 말고 옥상에서 불편하게 이렇게 적으면서 눈물이 고여. 하지만 사랑해. 나 목말라. 마지막까지 투정부려 미안한데 물 좀 줘….”

최군 가족은 충격과 비탄에 오열했다. 곧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2년6개월과 3년이라는 무거운 형량

경찰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피해자 최군은 권아무개군 등 5명의 친구한테서 수시로 집단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갈취당하는가 하면, 친구들이 요구할 때마다 매점에 가서 빵을 사다 주는 이른바 ‘빵셔틀’에 시달려 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최군을 더욱 못 견디게 한 것은 ‘성적 추행’이었다. 주동자 격인 권군은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최군의 바지를 강제로 내리게 하는가 하면, 김아무개군은 샤워실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행위를 강요했다는 것이다. 특히 김군의 경우 피해자 최군 집에 장기간 머물면서 최군 어머니로부터 식사 등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권군과 김군은 경찰에 구속됐고 나머지 5명의 가해 학생은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최군이 다녔던 중학교는 ‘전혀 피해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했다. 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 책임자인 교감은 “이번 해에 학폭위(학교폭력대책 자치위원회)를 네 차례 열었지만 최군의 피해 사실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열지 않았다… 담임교사로부터 학교폭력에 관해 전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최군의 중학교 2학년 담임교사는 “최군이 김군으로부터 폭행을 당해 멍이 들고 3일 동안 결석을 한 일이 있다”고 털어놨다. 결국 최군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죽음으로 고발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가혹한 집단폭행을 목격한 친구들 모두가 외면했고 학생을 보호해야 할 학교에서는 못 본 척 외면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2011년 12월20일, 대구에서 거의 같은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같은 반 친구 두 명에게서 1년여 동안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 권아무개군이 유서를 남긴 채 자신의 아파트 창문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당시 권군이 남긴 유서에는 “친구들이 전깃줄로 목을 감아 개처럼 끌고 다녔다”는 내용을 포함해 모욕적인 가학행위와 물고문 등 충격적인 폭행 사실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었다. 피해자 권군의 어머니 임씨는 “만약 이 유서대로라면 공포영화라 해도 이렇게 무서운 장면이 또 있을까”라고 비통해했다.

혐의가 드러나 구속 기소된 가해 학생 2명에게 각각 2년6개월과 3년 징역형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고, 가해 학생 부모와 학교법인한테는 1억3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학교폭력 실태조사 실시, 배움터 지킴이 등 보안인력 강화, 시시티브이 설치 확대, 학교폭력 가해 사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등의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또다시 경북 경산 최군 사건을 비롯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의 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학원폭력 가해자

학교폭력은 늘 있던 문제다. 하지만 지금의 양상은 충동과 감정이 솟구쳐 서로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다. 학생들끼리 최상위 ‘일진’부터 최하위 ‘찐따’까지 계급을 정해놓고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착취하고 괴롭히고 학대한다. 몸에 상처가 남지 않는 따돌림과 위협,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장난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 유발까지, 성인 범죄를 능가하는 지능적인 방법들이 동원되다 보니 교사나 부모조차 피해 학생이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나 메모를 보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수법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의 부모 등 주변 성인한테서 약한 사람을 지능적으로 괴롭히고 착취하는 방법을 배운다. 가정불화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의 축적’이 가장 큰 동기를 차지한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문제에 봉착하자 정면대응하기보다 약한 친구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며 마음대로 폭력과 착취를 행하면서 ‘대리만족’하며 복잡한 문제를 잊는다. 심리적 방어기제의 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가해 학생들 개개인보다 그의 부모와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잘못된 교육환경이 주범이라고 볼 수 있다.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알면서도 모른 체’해 온 친구들의 무서운 침묵이 발견된다. 피해 학생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의 부모와 주위 어른들 다수는 ‘나서지 마라. 모른 체해’라고 요구한다. 친구의 안타까운 죽음보다 눈앞의 성적과 진학이 더 중요하다고 배운 아이들이 커서 사회 각 부문을 이끌어 나가는 대한민국, 과연 정상적일까?

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오직 ‘이익’만을 기준으로 삼는 잔혹한 정글, 승자가 독식하고 약자는 짓밟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 문제와 잘못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세상은 계속될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소수자, 약자의 문제다.

교실에 있는 학생이 30명이라고 하자. 1번부터 30번까지 순위가 정해져 있고, 30번이 ‘찌질이’ 즉 착취와 따돌림, 폭력의 대상이다. 외모나 성적, 목소리, 태도, 복장 등 이유는 상관없다. 무엇이든 ‘우리와 달라. 넌 왜 그래?’라는 말 한마디면 된다. 30번이 자살하거나 전학 가면 이번에는 29번 그리고 28번 그리고 다음… 결국 누구든 피해 대상이 될 수 있다. 피해자가 아니라도 방관자로 지내야 하는 비겁함은 아이들의 정서를 망가뜨린다. 언젠가는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청소년기 감수성을 갉아먹는다. 상위 순번은 행복할까? 친구를 착취하고 괴롭히는 가혹한 가해자 노릇을 하는 아이들의 심성은 사정없이 뒤틀린다. 성인이 되어 제대로 된 삶을 살 리 없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잘 알려진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학업 스트레스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사건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은, 학교에서 사건 자체를 숨기기에 급급하다가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면 피해자 개인이나 집안 문제로 몰아붙이려 애쓰는 행태다. ‘다른 학생들은 그 정도로 자살하지 않아’, ‘원래 문제가 있는 아이였어’라는 식으로 피해자의 문제로 몰아가는 사실상의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것이다. 가해자 부모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청소년 심리와 발달 분야 전문가여야 할 교육자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현장 교사들과 대화를 해보면, ‘우리도 뭔가 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하기만 해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계약과 승진 등 일신상의 이해 때문에 학교나 재단 쪽이 바라지 않는 언행을 할 수 없다는 푸념도 들린다. 문제는 대부분 선진국과 달리 교육대학 등 교사 양성 과정에서 학교폭력이나 성희롱, 차별 등의 문제로부터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교육하거나 훈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학업) 지상주의’라는 한국 교육계의 뿌리 깊은 병폐가 작용한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경쟁시켜 좋은 상급 학교에 진학하도록 돕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생긴 문제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왜 피해 학생은 자살을 해야만 했을까?’이다. 성인기에 찾아오는 심각한 우울증이나 생의 의미를 상실하는 아노미형 자살과 달리 청소년기 자살은 스스로가 극복하지 못할 절망적 상황에 빠져 있는 가운데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극단적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 발생한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학교폭력은 두려움과 공포, 충격 등 ‘트라우마’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와 전문적인 상담 등을 통해 그 충격이 해소되지 않으면 만성적인 불안이나 무력감, 우울 감정 등이 생기고 그로 인해 위축된 모습은 추가적인 놀림과 따돌림, 괴롭힘의 원인이 된다.

문제가 지속되면 피해 학생은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 의문과 혼란에서 벗어나려는 본능적 대응은 자기 스스로를 책망하고 비난하는 지나친 ‘내적 귀인’ 혹은 부모나 세상 탓으로 돌리는 ‘외적 귀인’이라는 방어기제로 발동되기 쉽다. 지나친 자책으로 자존감이 상실되는 내적 귀인을 택하는 피해 학생의 경우 그로 인해 계급화, 체계화된 학교폭력의 먹이사슬에서 최하부의 먹잇감이 되고, 주위 친구나 교사 또는 부모 등에게 우회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외면당하거나, ‘마음을 굳게 먹어라’는 등 문제를 악화시키는 잘못된 조언을 듣게 되면서 ‘세상 그 누구도 내 편이 아냐.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라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교육부의 ‘학업 스트레스 추방’이 근본책

특히 지능적 가해 학생들이 폭력과 괴롭힘 뒤에 위로와 화해 제스처를 한 뒤 다시 폭력과 괴롭힘을 가하는 등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의 악순환 속으로 끌고 들어가면 피해 학생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라고 믿는 ‘학습된 무기력’ 상태가 된다. 1960년대 미국에서 감금된 개를 대상으로 전기충격을 주는 실험을 통해 확인된 ‘학습된 무기력’의 효과는, 사람의 경우 자살 혹은 가해자 살인 등 극단적인 결과를 부르는 사례가 많다. 대화 없는 가정, 학생 보호와 상담이나 인성교육이 부재한 학교, 경쟁과 성적만을 강요하는 잘못된 교육 풍토 아래서는 피해 학생이 최초 충격을 받은 이후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자살할 때까지 문제를 발견하고 적절하게 개입해 극단적인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장치와 시스템이 없어 결국 비극을 방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에서 몸을 던진 권군이나 최군이 2년 가까운 긴 시간 동안 폭력피해에 시달리는 동안 누구도 보호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의 영혼과 생명을 갉아먹는 학교폭력 문제는 매우 뿌리 깊고 오래되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해결하겠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잇따른 학교폭력 피해자 자살의 궁극적 책임을 져야 할 교육부는 시시티브이 설치, 스쿨 폴리스, 배움터 지킴이, 가해 사실 학교생활기록부 등재 등의 미봉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학교와 교사의 주된 역할과 임무를 ‘학생 안전 확보와 보호’와 ‘사회성 향상과 상담 지원’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교과수업이나 학습지도는 당연한 기본 임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 교사와 학교의 역할을 ‘교과 수업과 성적 향상’으로 설정한 현재의 교육정책이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몰고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를 부른다. 행복하지 않은 학생들이 폭력과 따돌림, 가혹행위를 하고, 올바른 인성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폭력을 보고도 방관자가 된다.

교육대학 등 교사양성 기관에서도 학생 보호기법과 절차를 정규 필수과정으로 개설해 훈련시켜야 한다. 피해 학생을 보호하고 가해 학생과 그 부모에게 특별한 치료와 교육을 부과하는 현 학교폭력대책법의 취지는 살리되, 현장 적용성이 떨어지는 조항들은 개선하는 등 법·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여전히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가 다른 학교로 전학 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내 아이만 챙기고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학부모의 학교 개입도 철저하고 당당하게 차단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청소년 자살률을 부른 대한민국 교육당국, 지금부터라도 문제의 실태부터 정확하고 면밀하게 파악한 뒤 장기적이고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어른들의 욕심과 잘못으로 우리 아이들을 더이상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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