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1심 무죄 공무원에 유죄 판결
“지위·영향력 볼때 암묵적 알선 뜻”
‘공직자 금품수수’ 처벌 강화될 듯
“지위·영향력 볼때 암묵적 알선 뜻”
‘공직자 금품수수’ 처벌 강화될 듯
고위 공직자가 금품을 받으면서 구체적인 알선 내용을 말하지 않은 채 ‘앞으로 도와주겠다’는 정도의 언급만 했더라도 알선수뢰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금품을 받은 공직자의 지위와 영향력 등을 따져, 앞으로 발생할 일에 대해 알선해주겠다는 뜻을 암묵적으로 전했다고 볼 수 있으면 처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된다면, 고위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한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황병하)는 기업인에게서 5000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뇌물)로 구속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받은 박아무개(51) 전 주중한국대사관 주재관에게 원심을 뒤집고 징역 2년6월에 벌금 1500만원 및 추징금 4200만원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박 전 주재관은 서울지방경찰청 간부로 있던 2006년 11월 후배 경찰관 등과 함께 김아무개(44)씨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의형제를 맺고 서로 돕고 살자. 네가 사업하다 어려운 일이 생겨 조사를 받거나 하면 내가 도울 테니…”라고 말했다. 김씨와 두번째 만나선 ‘승진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도와달라’고 했다. 김씨는 박 전 주재관에게 1300만원을 건네고 회사 법인카드를 주는 등 이듬해 6월까지 모두 5000여만원의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 박 전 주재관은 지난해 4월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돈 받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구체적으로 알선해주겠다고 대상을 특정하지 않았고, 상대방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금품을 준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김씨가 몇 가지 형사사건에 직간접으로 연루돼 있었지만, 구체적 알선 대상 사건이 언급되지 않은 만큼 금품을 알선 대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넨 돈이 ‘보험금’ 성격이라는 얘기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알선 의사 여부는 공무원의 지위, 영향력 범위, 돈 받은 이와의 관계, 받은 돈의 액수 및 횟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 뒤 “피고인은 경찰 조직에서 상위 0.5% 계급인 총경을 거쳐 상위 0.05% 이내 계급인 경무관을 역임한 고위 간부로, 장래에 발생할 형사사건 등을 담당할 경찰관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었다. 피고인이 김씨에게 ‘서로 돕고 살자’는 말을 하고 사실상 돈을 요구한 점 등을 보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형사사건에 대해 피고인의 지위를 이용해 영향력을 행사해 알선해주겠다는 의사를 암묵적으로 교환하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선수뢰죄가 성립하려면 알선 대상이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하급 공무원의 경우에는 알선할 사항이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많겠지만, 고위 공직자의 경우에는 영향력의 범위가 넓어 알선할 사항을 미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정해놓기 어려운 사례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므로 ‘장래에 발생할 형사사건 등’으로 알선할 사항을 파악한다고 해서 ‘알선할 사항의 특정’에 실패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고위 공직자의 뇌물사건에서는 특정 사건을 언급하지 않으며 돈을 건네는 경우가 더 자연스럽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박 전 주재관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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