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토요판/가족] 엄마의 콤플렉스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학 온 딸아이는 제법 새 학교에 적응을 잘해나가고 있다. 엄마 몰래 일기장을 교환하며 밀담을 나누는 단짝도 생겼고 너는 나의 “비에프에프”(BFF, Best Friend Forever)라며 엄숙하게 도원결의를 하는 또래그룹도 생겼다. 미국보다 한국 학교, 한국 친구들을 더 좋아하는 아이지만 여전히 툴툴거리는 불만이 한가지 있다. “점심시간이 너무 짧아요.” 시간표를 자세히 보니 여기서 점심시간은 45분. 급식실로 이동하고 줄을 서서 밥을 먹고 남는 시간 동안 놀아야 하니 막상 쉬는 시간은 15~20분 남짓. 전에 있던 미국 학교의 점심시간은 60분인데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시간이 관리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30분 동안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머지 30분은 교사의 인솔하에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 논다. 리세스(recess, 점심시간 뒤 휴식시간) 동안에는 혼자 교실에 머무는 것이 금지되기 때문에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든 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든 전교생은 원칙적으로 운동장에 나가 있어야 한다. “야외에서 놀기”는 일종의 의무사항인 셈이다.
최근 성적향상에 부심하는 미국에서도 수업일수를 늘리고 리세스 시간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의사와 교육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잘 노는 아이가 성적도 좋다”고 주장한다. 미국소아과저널이나 질병예방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의 신체활동이 수학과 읽기 성적을 향상시키고 과잉행동장애의 치유에도 효과가 크다고 한다. 장시간 앉아 있는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집중력 저하와 주의산만, 꼼지락대기(fidgeting) 증상이 점심 뒤 놀이시간을 통해 개선되고, 뇌에 산소와 글루코스의 공급이 원활해져 두뇌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점심시간 놀이의 효과는 성적향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하이오주립대의 로버트 머리 교수는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이 “아이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정서적, 사회적 기술을 함양한다”고 말한다. 체육시간과 달리 이때에는 아이들이 무엇을 할지 스스로 정해 놀기 때문에 누구와 어울리고 누구를 피할지, 갈등이 생긴 친구와 어떻게 화해하고 새 친구를 어떻게 사귀는지 배우는 기회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는 게 남는 거란 얘기다.
맘속으론 골백번 동의를 하고 다짐을 하는데도 막상 아이 놀리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머리 싸매고 뭘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에너지 통통 넘치는 아이를 바깥에 풀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을…. 지난 주말만 해도 그랬다. 오전에 밀린 숙제를 다 하고 오후엔 공원에 나가 놀자 했는데 아이는 두시가 넘도록 숙제를 하다 말다 게으름을 부렸다. 뭉그적대는 꼴이 괘씸해서 “넌 오늘 노는 거 취소야!” 했더니 아이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럴 줄 알았어요” 한다. 그 뒤론 노골적인 태업! 내 꼼수에 내가 당했구나…. 꽃망울 터지는 5월의 주말. 이번주엔 만사 제쳐놓고 노는 시간부터 줘야겠다. 아이에게도 광합성이 필요하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 “굴비야 미안해”…‘영광원전’ 이름 바꾼 사연
■ 문성근 전격 탈당…“민주당 혁신 희망 안보여”
■ 검찰 ‘국정원 댓글작업’ 사이트 8~9곳 전수 조사
■ 김영환 “국회서 왕따당하는 안철수, 신당 추진할 것”
■ “몸도 불편한데 공부해서 뭐해?”
■ “굴비야 미안해”…‘영광원전’ 이름 바꾼 사연
■ 문성근 전격 탈당…“민주당 혁신 희망 안보여”
■ 검찰 ‘국정원 댓글작업’ 사이트 8~9곳 전수 조사
■ 김영환 “국회서 왕따당하는 안철수, 신당 추진할 것”
■ “몸도 불편한데 공부해서 뭐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