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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게임에 미쳐 그렇게 살래
아내 외도에 속 썩어볼래

등록 2013-05-03 20:11

[토요판/가족]
게임중독 남편의 귀환
▶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게임). 정부는 이 네가지 ‘4대 중독’ 통합 대응 체계 마련을 올해 국정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도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을 대표 발의했다고 하네요. 게임중독은 청와대와 국회 모두 관심을 쏟는 중요한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10대의 게임중독만 문제일까요? 남편의 게임중독 때문에 이혼을 고민하는 상담도 많았습니다.

불꽃같은 연애와 결혼 뒤
남편은 가상현실로 떠났다
시댁에 치이고 애들에 받칠 때
내 생일선물도 안 사준 사람이
게임 아이템을 사 모았다

그러나 게임용품을 내다버렸다
게임 캐릭터가 아닌 가족을
보살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남편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게임과 결혼한 걸까.

일 끝나고 일찍 집에 오면 뭐하나, 내가 아닌 컴퓨터와 찰싹 붙어 있는 것을. 연애할 때는 나만 바라보던 사람이, 결혼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매 순간 놀랍다. 순진하고 착한, 세상 때가 덜 묻은 남편에게 나는 금방 반했다. 매일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불꽃같은 연애도 했다. 시댁 바로 옆으로 집을 구하자는 말에 토 달지 않은 것도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길 만큼 신혼여행도 달콤했다.

그러나 신혼여행을 다녀온 날부터 남편은 집에선 컴퓨터만 했다. 내가 “좀 그만하면 안 돼?”라고 화를 내면 남편은 “일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온종일 나가 일하고 집에서까지 왜 일하는 건지 의아했지만,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니까 그러려니 했다. 남편이 결혼 전에도 나를 만날 때 외에는 게임만 했던, 게임중독자라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았다.

게임을 달고 사는 남편에겐 나는 투명인간이었다. 사실상 시집살이나 다름없는 생활에 지쳤을 때도, 아이 둘과 혼자 아등바등 전쟁을 치러낼 때도 남편은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집안일과 육아와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임을 하다 잠도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잤다. 가사 노동에 지친 내가 이미 곯아떨어진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우리의 생활 주기는 불협화음이었다.

남편을 이해해보려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친구가 없으니 게임으로 위로받는 거겠지’라고 생각도 해봤다. 퇴근하면 집에선 자유인 남편과 달리,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자유를 잃었다. 남편은 현실과 가상공간을 헷갈려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나가서 술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라도 떨고 왔으면 덜 답답했을 거다. 어쨌든 그건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거니까. 가상현실 속에 빠진 남편에게 가정의 현실은 고려 대상이 못 됐다.

언젠가부터는 카드값이 훌쩍 뛰었다. 게임 아이템을 샀다고 했다. 남편 이름 앞으로 택배도 잦아졌다. 게임 관련 용품들이었다. 책도 사면 꼭 게임 책만 샀다. 그렇게 쌓인 게임 도구들이 방 한가득이다. 결혼한 뒤 내 옷 한 벌 안 사주고, 생일 선물조차 한 번 안 했던 남편이 엉뚱한 데 돈을 펑펑 쓰는 걸 보니 엄청 속상했다. 그 애정을 나에게 좀 쏟아주면 좋으련만, 나는 게임만도 못한 사람인 걸까?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겼다. 어렸을 때도 애들이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오면 게임만 했던 남편이다. 안 놀아주는 건 그렇다 쳐도, 애들이 보고 배우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실제 요즘 큰애가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게임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게 부쩍 잦아졌다. 혼낼 때마다 애가 한다는 말이 “아빠도 하잖아!”였다. 아직 초등학생밖에 안 됐는데도 저러는데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도 게임중독이 되는 건 아닐지 불안하다. 남들은 이맘때쯤이면 컴퓨터를 집에서 없앤다는데, 남편은 오히려 끌어안고 있으니. 남편은 아이들 걱정은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이 모든 걸 삭이고 살아왔다.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있던 나는, 남들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나는, 잔소리도 시원하게 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컴퓨터 좀 그만하고 애들 봐주면 안 돼?”라고 정말 힘들게 말했는데도, 남편은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는데도 꿋꿋하게 게임을 했다. 내게 정말 무감각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들자 나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게임을 하거나 말거나 기대 안 하고 포기하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막내까지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한숨 돌릴 틈이 생겼다. 그래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을 떠나 현실을 탈출하고 싶었다. 봉사활동은 보람 있었다. 작은 손길 하나에도 사람들은 고마워했다. 남편에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던 내 존재감이 그곳에서는 반짝반짝 빛났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다. 착한 남편과 내성적인 나와는 전혀 다른 거친 성격이었다.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구애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사랑한다”, “같이 있고 싶다” 같은 서슴없는 애정 표현에 메마른 내 마음도 촉촉해졌다. 가상 세계로 떠난 남편 대신 그는 내 현실이 됐다.

남편은 내 외도를 알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화를 냈지만 지은 죄가 있어 미안했던 탓인지, 함부로 나서진 못했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인 줄 알고 마음 편하게 있다 화들짝 놀란 걸까. 부부 싸움을 하면서 남편은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자기가 게임중독인 것도 몰랐고, 아이들이 아빠의 부재를 얼마나 크게 느끼는지도 몰랐단다. “돈 벌어왔는데 게임도 못 해?” 남편의 항변에 기가 찬다. 우리가 원한 건 ‘돈 버는 기계’가 아니라 자상한 아빠, 따뜻한 남편이었는데….

가족의 ㄱ자도 고민하지 않았던 남편이,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내가 왜 외도를 하게 됐는지 이유를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게임 관련 용품을 모두 내다버렸다. 밥 먹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을 나와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남편은 현실에 뿌리를 차츰 내리고 있었다. 의지를 보이는 모습에 나도 “아이들 좀 봐달라”, “내게 자유시간을 달라”, “가족과 함께 주말엔 소풍을 나가자”, “시댁과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가자”고 하나둘씩 적극적으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키우고 보살펴야 할 건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가족이란 걸 깨닫는 데 10년이 걸렸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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