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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4대악 뿌리뽑기’ 단속보다 홍보 잘해야 상준다고?

등록 2013-05-22 08:13수정 2013-05-22 09:14

[사회 쏙] 경찰 ‘4대악 척결’ 과잉 홍보

“4대악을 뿌리뽑겠다”는 경찰의 구호만으로 국민들의 안전한 삶이 보장될 수 있을까? 4대악 척결 대국민 홍보전에 ‘올인’한 경찰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정부 출범 100일이 되는 6월4일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4대악 척결에 경찰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지역에 대해서는 지휘관에게 책임을 묻겠다.”

4월11일 이성한 경찰청장은 취임 뒤 첫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를 열어 이렇게 말했다. 정부 출범과 함께 ‘4대 사회악 근절’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의 뜻을 받든 것이다.

정부와 경찰이 척결을 외치는 4대악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이다. 4대악 척결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구호만 요란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행하는 구호성 캠페인과 전시행정으로는 국민행복은커녕 국민불행과 국민냉소를 낳을 뿐이라는 게 일선 경찰관들과 시민사회의 의견이다.

박대통령이 핵심과제로 내세우자
경찰청장 “역량집중·평가뒤 문책”

평가 50%가 시민설문조사에 달려
일선에서 콘서트·거리홍보 열올려

목표 할당제까지 도입 승진 차등
“전시행정으로 경찰력 낭비” 비판

■ 4대악과 함께 달아오르는 봄 경찰의 ‘4대악 홍보전’은 한창 뜨겁다. 일요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나가면 ‘알랑가몰라’를 외치며 춤추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사는 4대악 관련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곡은 가수 싸이의 ‘젠틀맨’이다. 경찰교향악단과 의장대가 연주하고 경찰대생들은 노래하며 춤춘다. 경찰대가 지난달 28일부터 열고 있는 ‘4대 사회악 아웃 콘서트’다. ‘4대 사회악 아웃 100만인 서명운동’과 더불어 10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경찰대가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대 사회악 아웃 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A href="mailto:hyopd@hani.co.kr">hyopd@hani.co.kr</A>
경찰대가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대 사회악 아웃 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광화문광장을 차지한 경찰대와 달리 일선 경찰서들은 장소가 마땅찮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봄철 지역축제다. 충남 보령경찰서는 대천항수산물축제, 경기 양평경찰서는 용문산 산나물축제, 경북 문경경찰서는 문경전통찻사발축제 등 관할 지역의 축제를 4대악 척결 홍보 장소로 애용하고 있다. 축제에 사람이 몰리는 주말이면, 길거리 홍보전에 부서를 가리지 않고 경찰 인력이 투입된다.

영상 제작도 경쟁적이다. 대구경찰청과 산하 10개 경찰서 중 8개 경찰서는 지난 3월부터 4대악 척결 홍보용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만들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이나 싸이의 노래를 패러디한 3~15분 분량의 영상엔 의경이나 방범순찰대 직원들이 출연했다.

민간 기업과의 업무협약도 다양하게 이뤄지는 중이다. 인천경찰청은 지난 14일 피시(PC)방 프로그램 관리업체 3곳과 ‘4대악 근절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피시방 컴퓨터의 시작 화면에 경찰의 배너광고와 팝업창이 나타나는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충남 금산경찰서는 지역 신용협동조합과 협조해 현금인출기 모니터를 통해 ‘4대 사회악 근절’ 홍보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4대악 척결 평가를 설문조사로? 경찰관들이 4대악 홍보를 위해 길거리로 나선 이유는, 앞으로 있을 ‘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경찰 수장의 엄포는 최근 구체적인 ‘4대 사회악 근절 평가계획’으로 만들어져 16개 지방경찰청에 하달됐다.

경찰청의 ‘4대악 근절 티에프(TF)’가 작성한 평가계획을 보면, 경찰청은 각 지방경찰청의 4대악 근절 활동을 ‘체감안전도(50%), 정량지표(30%), 내·외부 평가(20%)’로 나눠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측정할 예정이다. 이 결과에 따라 지방경찰청의 순위를 매겨 특진 정원에 차등을 둔다는 계획을 세웠다.

점수 비중이 가장 큰 체감안전도 부문은 설문조사로 평가한다. 무작위로 뽑힌 국민들에게 체감안전도와 4대악 관련 폭력피해를 당한 경험, 경찰 활동의 만족도, 향후 신고의사 등을 묻고 그 결과가 곧 체감안전도 평가로 이어진다. 홍보를 앞세우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외부 평가(20%)는 주관적이다. 경찰청 차장 등 내부인사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구성된 ‘내·외부 평가단’의 평가와 홍보성과를 측정해 평가한다. 여기에도 ‘홍보’가 들어 있다. 수치와 실적으로 측정하는 정량평가(30%)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재범률·검거건수 등으로, 학교폭력은 피해경험률·감소율을 반영해 이뤄진다. 불량식품 단속은 사건의 중요도나 수사 난이도 등을 반영하는 ‘주관적 정량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실적평가만 하면 단속 일변도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안전도 평가에 높은 비중을 뒀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관은 “4대악이 갑자기 늘어나지도 않았고 한정된 인력으로 검거 건수를 늘리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여론조사로 측정된 홍보효과로 평가가 이뤄진다고 하니 일선에선 ‘대국민 홍보전’에 인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5년 전 엠비정권과 판박이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후로 ‘법질서 확립’을 부르짖었다. 2008년 2월 취임한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 역시 이를 받들어 기초·교통질서 확립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전국의 경찰들은 기마대를 동원하고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법질서 확립을 홍보하고 다녔다.

이명박 정부는 ‘실적’을 더 강요했다. 경찰은 실적 채우기에 만만한 경범죄처벌법을 꺼내들었고, 그 결과 2007년 10만3401건이던 경범죄처벌법 단속 건수는 2008년 30만7912건으로 3배가 늘었다. 이듬해인 2009년 13만7717건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지난해엔 5만8002건으로 곤두박질했다. 경찰에게 주어지던 단속 점수가 2011년 말 사라진 결과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에 최일선의 경찰이 동원되고 있는 셈이다. 장정욱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팀장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경찰의 행정력이 정권의 필요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 성과주의와 상명하복 등 구시대적인 경찰 문화 때문에 쉽게 정권에 휘둘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 입장에선 정권에 코드를 맞추면서 더 많은 인력과 고위직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국민들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많은 경찰이 4대악 홍보에 골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경찰 인력이 그만큼 남아돈다는 걸 방증한다”고 비판했다.

■ “과유불급” “포퓰리즘”…불만 급증 현장 경찰관들의 불만은 늘어간다. 경찰은 최근 재가 여성장애인이나 지적장애여성 등 성범죄 위험에 노출된 여성장애인들을 면담해 현황을 파악·관리하라는 공문을 현장에 내려보냈다. 이 업무를 담당한 한 경찰관은 이달 초 경찰 내부게시판에 ‘당사자인 장애여성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지시’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 비판했다. “여성장애인을 상대로 면담하려는 시도 자체가 당사자 입장에서는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인적사항이나 가정환경, 성범죄 피해 여부, 감시카메라 설치 여부를 묻거나 심지어 해당 장애인의 행동반경까지 경찰이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순찰할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다.

심지어 경찰은 목표할당제까지 도입했다. 경찰청 관할 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지난 5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3년 업무계획을 보고하면서 ‘4대악 감축목표 관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4대악 근절 평가계획’의 50%를 차지하는 체감안전도 평가의 30%를 ‘목표치 달성도’로 측정하기로 했다. 즉, 4월에 조사한 체감안전도가 6월(1차)과 10월(2차) 조사에서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자체적으로 정한 목표치는 6월까지 3%, 10월까지 5% 증가다.

지역 경찰청에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지휘부는 ‘국민을 위한 정책’ ‘경찰이 해야 할 업무’라고 강조하지만 때마다 반복되는 과중한 업무와 동원으로 아래 직원들은 지쳐가고 있다. 정권과 수장이 바뀔 때면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지만 결국 남는 건 지휘관들의 승진뿐”이라고 푸념했다. 한 경찰관은 경찰 내부게시판에 “목표할당제는 사기업에서도 권한남용에 해당한다”고 하소연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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