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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밀양 희망버스’ 타보니 “야만적 사회에 저항하려…”

등록 2013-05-25 15:19수정 2013-05-27 15:20

직장인, 학생, 수녀 등 다양한 사람들 모여
“고통받는 할아버지·할머니 응원 하고 싶다”
차창 밖으로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하나둘 차에 올랐다. 지난 24일 저녁 8시,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인근 공영주차장에 세워진 2대의 ‘탈핵희망버스’로 9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경남 밀양 주민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희망버스는 환경연합 등 시민단체로 꾸려진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기획했다.

차에 오른 사람들은 다양했다. 대부분 초면이라고 했다. 서울과 경기·인천 지역에 살고 있는 직장인, 중소 상공인, 학생, 수녀, 화가, 사진가, 교사, 취업준비생 등이 모였다. 환경단체 회원들과 녹색당 당원도 일부 함께했다.

희망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밀양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국가 폭력에 무참하게 내몰리는 상황에 분노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잖아요. 약자를 괴롭히는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2호차에 탄 직장인 김진철(48)씨가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의 김수희 교사는 중학생 30여명과 함께 1호차에 올랐다. 그는 학생들이 먼저 제안해 버스에 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학생들과 함께 밀양으로 도보여행을 갔어요.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분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아이들이 듣고는 응원하러 가자고 해서 오게 됐어요.” 김씨가 웃으며 말했다.

대학생 허아무개(25)씨도 “고통받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내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직접 만나뵙고 위로해 주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가 한전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아무개(26)씨는 “한전 때문에 고통받는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 버스에 올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5시간가량 어둠 속을 달린 희망버스는 25일 자정께 밀양에 도착했다. 서울·경기에서 온 90여명을 비롯해 부산·경남, 대구·경북, 춘천 등에서 모인 사람들은 모두 25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마을회관 등에서 잠시 쉰 뒤, 새벽 4시께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인 산동면, 부북면 등 4개 면 공사장으로 흩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새벽 3시께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사를 재개하려는 한전 쪽의 공사 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부분 60~70대인 주민들은 농성을 힘들어 했다. 쇠약한 몸으로 매일 새벽 3시부터 늦은 밤까지 농성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전 쪽에 맨몸으로 저항하다 실신하는 등 부상을 당해서다. 주민 김수암(71) 할머니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지난 22일 한전 직원·경찰 등과 실랑이를 벌이다 어깨가 탈골된 탓이다. “병원에서는 3~4일 입원하며 쉬어야 한다던데, 누워 있을 수가 없어. 언제 공사를 할지 모르니까. 몸은 성치 않지만 나와서 자리라도 지켜야 맘이 편해.” 할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다.

특히 주민들은 농번기인데도 공사장을 지키느라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사연리 동화마을 양윤기(65) 이장은 “지금 한창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하고 대추나무 순도 따줘야 하는데 주민 대부분이 못하고 있다. 앞으로 그들의 생계도 큰 문제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희망버스 탑승자들은 이날 주민들과 함께 공사장을 지켰다. 가지고 온 한약과 비타민제 등을 나누고,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지친 몸을 풀어주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팔과 등을 안마해주기도 하고,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주민들은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다. 후손에게 잠시 빌려 쓰는 거다. 그 자연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의 상황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오래도록 살아온 고향에서 다툼없이 살고 싶어했다. 전국에서 250여명의 사람들이 밀양을 찾은 이날, 한전은 공사를 시도하지 않았다. 밀양의 여름은 뜨겁게 다가와 있었다. 밀양/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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