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희망버스 동승기
“고통받는 어르신들에 힘 되고파”
250여명 버스 타고 밀양에 도착 새벽부터 공사장 함께 지키며
고단한 일상에 지친 주민들 위로
“와 줘서 고맙네, 꼭 다시 만나요” 24일 저녁 8시, 차창 밖으로 어둠이 스미자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공영주차장에 모여든 90여명은 2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탈핵 희망버스’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한국전력공사에 맞서고 있는 경남 밀양 주민들을 향해 달려갈 참이었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부산·경남, 대구·경북, 춘천 등에서 탈핵 희망버스는 시동을 걸고 있었다. 시민들은 다양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직장인, 중소 상공인, 학생, 수녀, 화가, 사진가, 교사, 취업 준비생 등이었다. 이들 서로는 거의 초면이었다. 환경단체 회원들과 녹색당 당원들도 함께했다. 이들을 버스에 태운 건 공감과 분노였다. 한결같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밀양에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잖아요. 약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는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탔습니다.” 직장인 김진철(48)씨는 2호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마포구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의 중학생 30여명은 1호차에 탔다. 학생들과 함께한 김수희 교사는 “아이들이 응원하러 가자고 해서 왔다”며 웃었다. “지난달 학생들과 함께 밀양으로 도보여행을 갇는데, 그때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아이들이 듣고는 가자고 했어요.” 아버지가 한전에서 일한다는 이아무개(26)씨도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전 때문에 고통받는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화가인 김찬기(30)씨는 “언론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할아버지·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남 일 같지 않아서 가게 됐다”고 했다. 희망버스는 5시간 어둠을 헤쳐 밤 12시가 넘어서야 밀양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까지 포함해 모두 250여명이 밀양에 모여들었다. 마을회관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라는 상동·부북·단장·산외면 등으로 새벽 4시께 흩어져 들어갔다. 마을주민들은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사를 재개하려는 한전의 공사 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해서다. 주민 김수암(71) 할머니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지난 22일 한전 직원·경찰 등과 실랑이를 벌이다 어깨가 탈골됐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이상 입원하며 쉬라 카대. 근데 누워 있을 수 있나. 불안하니까. 몸이 아파도 나와서 자리라도 지켜야 맘이 편해.” 할머니 얼굴에 주름은 깊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김수암 할머니처럼 60~70대다. 무엇보다 이곳 농민들은 농번기인데도 공사장을 지키느라 농삿일에 손을 놓고 있다. 사연리 동화마을 양윤기(65) 이장은 “지금 한창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하고 대추나무 순도 따줘야 하는데 주민 대부분이 못하고 있다. 농사는 다른 일과 달리 때가 있어 지금해야 할 작업을 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친다. 앞으로 주민 생계도 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공사장을 지켰다. 한약과 비타민제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줬고,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주민들은 위로받았다. 대구에서 3살 된 딸을 데리고 온 한 부부는 아이와 함께 ‘곰 세마리’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흥을 돋웠고, 주민 이선옥(48)씨는 ‘밀양 아리랑’으로 화답했다. 주민 임오순(72) 할머니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고 거듭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반나절을 밀양에서 보내고 오후 4시께 짐을 쌌다. “와 줘서 고맙다. 꼭 다시 만나자.” 할머니들은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나무들이 싹쓸이로 잘려나간 공사장 위로 5월의 따가운 햇살만 무심히 떨어지고 있었다. 밀양/글·사진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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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여명 버스 타고 밀양에 도착 새벽부터 공사장 함께 지키며
고단한 일상에 지친 주민들 위로
“와 줘서 고맙네, 꼭 다시 만나요” 24일 저녁 8시, 차창 밖으로 어둠이 스미자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공영주차장에 모여든 90여명은 2대의 버스에 올라탔다. ‘탈핵 희망버스’다.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한국전력공사에 맞서고 있는 경남 밀양 주민들을 향해 달려갈 참이었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부산·경남, 대구·경북, 춘천 등에서 탈핵 희망버스는 시동을 걸고 있었다. 시민들은 다양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직장인, 중소 상공인, 학생, 수녀, 화가, 사진가, 교사, 취업 준비생 등이었다. 이들 서로는 거의 초면이었다. 환경단체 회원들과 녹색당 당원들도 함께했다. 이들을 버스에 태운 건 공감과 분노였다. 한결같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밀양에 있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우리 사회의 약자잖아요. 약자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막무가내로 공사를 강행하는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사회에 저항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탔습니다.” 직장인 김진철(48)씨는 2호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마포구 대안학교 ‘성미산학교’의 중학생 30여명은 1호차에 탔다. 학생들과 함께한 김수희 교사는 “아이들이 응원하러 가자고 해서 왔다”며 웃었다. “지난달 학생들과 함께 밀양으로 도보여행을 갇는데, 그때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분들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을 아이들이 듣고는 가자고 했어요.” 아버지가 한전에서 일한다는 이아무개(26)씨도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전 때문에 고통받는 어르신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화가인 김찬기(30)씨는 “언론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접하니 할아버지·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남 일 같지 않아서 가게 됐다”고 했다. 희망버스는 5시간 어둠을 헤쳐 밤 12시가 넘어서야 밀양에 도착했다. 다른 지역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까지 포함해 모두 250여명이 밀양에 모여들었다. 마을회관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이라는 상동·부북·단장·산외면 등으로 새벽 4시께 흩어져 들어갔다. 마을주민들은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사를 재개하려는 한전의 공사 장비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해서다. 주민 김수암(71) 할머니는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지난 22일 한전 직원·경찰 등과 실랑이를 벌이다 어깨가 탈골됐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이상 입원하며 쉬라 카대. 근데 누워 있을 수 있나. 불안하니까. 몸이 아파도 나와서 자리라도 지켜야 맘이 편해.” 할머니 얼굴에 주름은 깊었다. 주민들은 대부분 김수암 할머니처럼 60~70대다. 무엇보다 이곳 농민들은 농번기인데도 공사장을 지키느라 농삿일에 손을 놓고 있다. 사연리 동화마을 양윤기(65) 이장은 “지금 한창 모내기 준비를 해야 하고 대추나무 순도 따줘야 하는데 주민 대부분이 못하고 있다. 농사는 다른 일과 달리 때가 있어 지금해야 할 작업을 하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친다. 앞으로 주민 생계도 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공사장을 지켰다. 한약과 비타민제 등을 주민들에게 나눠줬고,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고단한 일상에 지친 주민들은 위로받았다. 대구에서 3살 된 딸을 데리고 온 한 부부는 아이와 함께 ‘곰 세마리’ 노래에 맞춰 율동을 하며 흥을 돋웠고, 주민 이선옥(48)씨는 ‘밀양 아리랑’으로 화답했다. 주민 임오순(72) 할머니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고 거듭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반나절을 밀양에서 보내고 오후 4시께 짐을 쌌다. “와 줘서 고맙다. 꼭 다시 만나자.” 할머니들은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나무들이 싹쓸이로 잘려나간 공사장 위로 5월의 따가운 햇살만 무심히 떨어지고 있었다. 밀양/글·사진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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