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상대 손배소 항소심 최후변론
시민·학생들 방청석 메운채 공방
시민·학생들 방청석 메운채 공방
29년 전 군대에서 총 3발을 맞고 쓰러진 한 병사의 죽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두번이나 타살이라고 결론냈지만 여전히 국가를 상대로 한 유족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사건.
28일 오후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법학관 모의법정에서는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허원근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최후변론이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강민구) 심리로 열렸다. 서울고법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에 대한 공론화를 활성화하는 취지로 법정을 대학 캠퍼스로 옮긴 것이다. 이날 학생·시민들이 260석 방청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유족과 국방부 대리인이 허 일병의 사인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 일병(당시 22살)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상을 입고 숨졌고 당시 군 당국은 자살로 결론냈다. 이후 18년 만인 2002년 9월 의문사위는 허씨가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자체 조사를 벌여 그해 11월 허 일병의 사망은 자살이라고 다시 주장하면서 공방이 벌어졌고, 의문사위는 2004년 재조사를 한 뒤 타살이라고 결론냈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서울중앙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3년 만인 2010년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의 사인을 타살로 판단하고 “국가가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국가가 항소한 상태다.
이날 법정에서는 머리와 가슴 부위에 총상을 입은 허 일병의 사망 당시 현장 사진이 공개됐다. 유족 대리인은 허 일병 주변에 피와 살점 등이 거의 없이 깨끗하다는 점을 근거로, 이곳이 사망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누군가가 허 일병을 쏜 뒤 타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옮겼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 대리인은 주검이 이동했다면 총을 맞은 머리에 피가 범벅이 됐을 텐데, 피가 일정한 방향으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점 등을 들어 주검의 이동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2시간에 걸쳐 양쪽의 공방이 오간 뒤 재판을 마치면서 강민구 재판장은 “자식을 군에 보낸 아버지 처지에서 국가기관이 아들의 죽음이 어떤 죽음인지 서로 다른 결과를 주장하는 것을 30년간 지켜본다면, 과연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국가의 존재 근거가 구성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해 절규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또 “당시 중대장과 동료 중대원이 진실을 가장 잘 알 텐데, 그들이 더 이상 처벌의 위험이 없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해 30년 세월이 흘렀다는 점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 법관으로서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72)씨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고 30년을 뛰었지만 여전히 국방부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앞으로 단 한명의 죽음이라도 왜곡되지 않도록 제도가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로 항소심 변론은 모두 끝났으며, 선고는 8월22일에 할 예정이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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