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피해입은 가난한 학생에
청예단·육성회, 수여식 필참 요구
“사진도 찍힐텐데…2차 피해” 우려
청예단·육성회, 수여식 필참 요구
“사진도 찍힐텐데…2차 피해” 우려
“교복은 입지 말고, 모자를 쓰고 가도록 하렴. 원치 않으면 사진 안 찍어도 돼….” 교사가 말하자 제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장학금 수여식에 가는 제자에게 서울 한 중학교의 ㅅ교사는 차마 ‘축하한다’는 말을 못 꺼냈다. 지난달 16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에서 제자는 장학금을 받았다.
ㅅ교사는 지난 3월 청예단의 장학금 지원 대상으로 제자를 추천했다. 장학금 신청 안내문에는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피해 학생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을 우선적(1순위)으로 선발해 장학금(120만원)을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이 학생은 가정형편이 어려웠다.
지난달 10일 청예단에서 제자가 장학금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안내 문자가 왔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장학금 수여식에 학생이 반드시 참석해야만 장학금이 지원된다’는 것이었다. “가난하고 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을뿐더러 사진도 찍힐 텐데 2차 피해의 우려도 있다”며 ㅅ교사는 “꼭 가야 하냐”고 청예단에 물었다.
청예단 쪽의 태도는 강경했다. “안내문을 통해 이미 알린 대로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장학금을 포기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했다. 청예단의 안내문에는 “선정된 장학생은 장학금 수여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어쩔 수 없죠, 뭐.” 장학금이 절실한 제자는 힘없이 말했다.
또다른 중학교의 한 학생은 장학생으로 뽑히고도 수여식에 불참해 결국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경찰청 산하 단체인 ‘한국청소년육성회’(육성회)의 영등포지구회는 영등포구에 있는 중·고교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학교당 1명씩 뽑아 장학금 20만원을 줬는데, 영등포경찰서에서 14일 열린 장학금 수여식에 참석한 학생들만 받을 수 있었다. 전체 장학금 지급 대상자 67명 가운데 5명이 수여식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수여식에는 대상자 62명을 포함해 영등포경찰서장, 파출소장, 동주민들로 꾸려진 학교폭력 선도위원, 영등포구 어머니회 회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예민한 청소년들이 대중의 시선 앞에 자신을 노출해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장학금 지급 요건으로 수여식 참석을 내거는 까닭은 뭘까. 청예단과 육성회는 공통적으로 ‘성의’를 들었다. 청예단 관계자는 “장학생이 수여식에 참석하는 것은 후원자들에 대한 배려다. 고마운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참여를 독려한다”고 말했다. 육성회 관계자도 “생색을 내려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달라는 측면에서 학생들의 참석을 조건으로 내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교폭력·성폭력 등의 피해를 입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수여식 참여를 조건으로 장학금을 주는 것은 장학사업의 취지와 무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신이 저소득층이라는 신분이 노출될까봐 급식 등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학생이 많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장학금을 준다 하더라도 학교폭력·성폭력·가난 등의 이유로 스스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학생에게 수여식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되레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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