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검찰 수사로 본 ‘원전 비리 복마전’
한수원 간부-공사업체 공사비 부풀려 나눠먹기
녹슨 부품 빼돌려 녹 벗긴뒤 새제품인냥 되사줘
한수원 간부-공사업체 공사비 부풀려 나눠먹기
녹슨 부품 빼돌려 녹 벗긴뒤 새제품인냥 되사줘
원자로 건물에 쓰이는 보온재를 납품하는 ㄷ사 대표 김아무개씨는 2008년부터 고리원전 2호기에 들어갈 제품을 납품했다. 격납건물 내부의 배관 등에 사용되는 보온재는 내진·내열 성능 점검을 거쳐 인증된 특수 보온재를 사용해야 한다. 설치할 때도 스테인리스 케이스로 감싼 뒤 2중클립으로 고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화재나 충격에 약한 일반 보온재를 썼다. 또 2중클립이 아닌 일반 클립으로 고정했다. 고리원전 기계팀 박아무개 과장은 이를 알고도 눈감았다. 박 과장은 3년 동안 김씨한테서 4억5200만원을 받아 챙겼다. 규격 미달 보온재는 화재·지진이 발생하면 바닥에 떨어져 취수구를 막고, 펌프로 유입된 물의 흐름을 막아 스프링클러 작동을 방해한다. 이렇게 되면 원자로의 폭발 위험성이 커진다.
지난 1월 울산지법 형사1단독 김낙형 판사는 김씨에게 징역 3년6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원전에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규격 미달 보온재를 설치한 행위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부패 중에서도 불법성과 비난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2일 <한겨레>가 최근 2년간 울산지검, 부산지검 동부지청, 광주지검 등이 수사한 원전 비리 수사결과와 관련자들의 판결문 30여건을 분석해보니, 원전 납품 과정은 온갖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원전 비리를 수사했던 검사들은 말하고 있다.
■ 조작된 품질보증서로 부품 1만개 납품 올해 초 광주지검은 200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품질보증서 192장을 위조해주고 10억86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문서 위조)로 품질보증서 발급 대행업체 대표 등 5명을 기소(4명 구속)했다. 이렇게 위조 보증서를 통해 들어간 부품은 모두 1만396개였다. 국외 검증기관의 품질검사를 대행해주는 중간업체가 이미 사용한 품질보증서의 파일을 편집하거나 엑셀파일로 아예 날조된 품질보증서를 만들어 업체에 전달하면 해당 업체는 위조된 보증서를 한수원에 내는 구조다. 납품업체가 제조 경로가 불투명한 부품을 인터넷을 통해 헐값에 구입한 뒤 직접 품질보증서를 조작해 제출하기도 했다. 보증서는 사본을 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일부 실무 관행을 악용한 것이다.
원전 부품은 원자로 안전에 미치는 중요도에 따라 안전성등급(Q등급), 안전성영향등급(A등급), 일반산업등급(S등급)으로 나뉜다. Q등급 제품은 원자로나 원자로의 안전에 관련된 부품이다. 고장나면 방사선 장애를 직간접적으로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A등급은 안전 관련 구조물이나 기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품질보증이 요구되는 품목이다. 이들이 품질보증서를 위조한 부품은 모두 Q·A등급 부품이었다.
■ 공사비 부풀리고 자재 빼돌려 한수원 영광원자력본부 정아무개 계측제어팀장은 2011년 3월 원전계측제어시스템 개발업체인 ㅇ사가 적정 가격보다 2억원 이상 높이 써낸 이른바 ‘업 견적서’를 묵인하는 대가로 8000만원을 받는 등 각종 계약 체결·연장을 해주고 5개 업체로부터 2억4000만원을 받았다.
자격 미달인 외국업체
뇌물로비에 협력업체 등록 한수원 직원들은 심지어 원전 자재를 빼돌려 업체에 넘기고 이를 다시 구매해주기도 했다.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신아무개 터빈과장은 2008년 기계팀에서 발주하는 터빈밸브작동기 납품계약을 ㅎ사가 낙찰받게 되리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 신 과장은 ㅎ사 대표와 짜고 발전소의 정비소에서 2년 동안 방치돼 녹이 슨 터빈밸브작동기의 주요 부품을 ㅎ사 공장으로 빼돌렸다. ㅎ사는 이들 부품의 녹을 벗겨내고 다른 중고부품을 구해와 조립한 뒤 미완성 상태의 기계를 마치 신제품인 것처럼 납품했다. 한수원으로부터 계약금 12억7000만원을 받아 신 과장과 ㅎ사가 이를 나눠 챙겼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최석문)는 신 과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한수원이 단순히 재산 손해를 입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원전의 안전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 경쟁은 없다…돈 주면 된다 한수원 본사 관리처장 김아무개씨는 과거 자재구매 등을 담당하면서 납품업체와 접촉이 잦았다. 외국 납품업체가 한수원의 협력업체로 등록되도록 중개 역할을 하는 서아무개씨는 김씨가 요구할 때마다 용돈을 주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08년 서씨가 담당하는 핀란드 ㅂ사 제품의 기술규격이 한국과 달라 한수원의 협력업체 등록이 어렵게 되자, 서씨는 김씨에게 “기술부서 직원들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하며 3000만원을 건넸다. 김씨의 개입으로 결국 ㅂ사는 2010년 1월 협력업체로 등록됐다. 이후 ㅂ사는 울진 1·2호기 비상발전기 입찰에 참여해 9200만원 상당의 계약을 따냈다. 은행주차장 ‘현금 박스’
시민 제보로 31명 구속도 영광원자력본부 계측제어팀장 정씨는 2011년 계측제어시스템 개발업체인 ㅅ사의 기술평가 점수를 올려줘 이 업체가 공사계약을 따낼 수 있게 해줬다. 또 10억원 이상 되는 발주공사는 기술자격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ㄱ사 대표로부터 4000만원을 받고 담당 부서에 압력을 넣어 ㄱ사가 수주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울산지법 형사3부(재판장 성금석)는 지난해 9월 정 팀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면서 “발주계약 체결에 절대적 권한이 있는 각 분야 팀장이 권한을 악용해 특정업체와 유착관계를 형성한 뒤, 업체의 납품단가를 올려주거나 입찰정보를 알려주고 유착업체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쟁업체에 입찰에서 빠지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발전소의 기술 수준에 미흡한 장치임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많은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한수원 납품과 관련해 보이지 않는 뇌물 장벽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쉽게 드러나지 않는 비리 업계의 폐쇄성으로 원전 비리는 좀체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한수원 직원 등 31명이 구속되고 16명이 불구속기소된 울산지검의 한수원 임직원 금품수수 비리 수사도 지난해 9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이 “울산 남구에 있는 한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어떤 남자가 현금 뭉치를 음료수 박스에 담는 것을 봤다. 뇌물로 의심된다”고 검찰에 전화한 것에서 시작했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은행 폐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를 분석해 문제의 남자가 원전 납품업체인 ㄱ사 대표 이아무개씨라는 걸 밝혀냈다. 이씨의 통화내역 조회 등을 거쳐 상자에 담긴 5000만원이 고리원전 김아무개 부장에게 전달된 사실을 확인한 뒤 수사는 급진전됐다. 당시 원전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 간부는 “원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만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관련된 업체 등 수사 규모가) 너무 방대해서 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는 빙산의 일각만 밝혀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경미 김원철 기자 kmlee@hani.co.kr
뇌물로비에 협력업체 등록 한수원 직원들은 심지어 원전 자재를 빼돌려 업체에 넘기고 이를 다시 구매해주기도 했다.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 신아무개 터빈과장은 2008년 기계팀에서 발주하는 터빈밸브작동기 납품계약을 ㅎ사가 낙찰받게 되리란 사실을 사전에 알았다. 신 과장은 ㅎ사 대표와 짜고 발전소의 정비소에서 2년 동안 방치돼 녹이 슨 터빈밸브작동기의 주요 부품을 ㅎ사 공장으로 빼돌렸다. ㅎ사는 이들 부품의 녹을 벗겨내고 다른 중고부품을 구해와 조립한 뒤 미완성 상태의 기계를 마치 신제품인 것처럼 납품했다. 한수원으로부터 계약금 12억7000만원을 받아 신 과장과 ㅎ사가 이를 나눠 챙겼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최석문)는 신 과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면서 “한수원이 단순히 재산 손해를 입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원전의 안전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야기했다”고 말했다. ■ 경쟁은 없다…돈 주면 된다 한수원 본사 관리처장 김아무개씨는 과거 자재구매 등을 담당하면서 납품업체와 접촉이 잦았다. 외국 납품업체가 한수원의 협력업체로 등록되도록 중개 역할을 하는 서아무개씨는 김씨가 요구할 때마다 용돈을 주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2008년 서씨가 담당하는 핀란드 ㅂ사 제품의 기술규격이 한국과 달라 한수원의 협력업체 등록이 어렵게 되자, 서씨는 김씨에게 “기술부서 직원들을 설득해달라”고 부탁하며 3000만원을 건넸다. 김씨의 개입으로 결국 ㅂ사는 2010년 1월 협력업체로 등록됐다. 이후 ㅂ사는 울진 1·2호기 비상발전기 입찰에 참여해 9200만원 상당의 계약을 따냈다. 은행주차장 ‘현금 박스’
시민 제보로 31명 구속도 영광원자력본부 계측제어팀장 정씨는 2011년 계측제어시스템 개발업체인 ㅅ사의 기술평가 점수를 올려줘 이 업체가 공사계약을 따낼 수 있게 해줬다. 또 10억원 이상 되는 발주공사는 기술자격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ㄱ사 대표로부터 4000만원을 받고 담당 부서에 압력을 넣어 ㄱ사가 수주를 받을 수 있게 해줬다. 울산지법 형사3부(재판장 성금석)는 지난해 9월 정 팀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면서 “발주계약 체결에 절대적 권한이 있는 각 분야 팀장이 권한을 악용해 특정업체와 유착관계를 형성한 뒤, 업체의 납품단가를 올려주거나 입찰정보를 알려주고 유착업체의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쟁업체에 입찰에서 빠지라고 강요하기도 한다. 발전소의 기술 수준에 미흡한 장치임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납품계약을 체결하는 등 수많은 부정행위를 저질렀고, 한수원 납품과 관련해 보이지 않는 뇌물 장벽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 쉽게 드러나지 않는 비리 업계의 폐쇄성으로 원전 비리는 좀체 꼬리가 잡히지 않는다. 한수원 직원 등 31명이 구속되고 16명이 불구속기소된 울산지검의 한수원 임직원 금품수수 비리 수사도 지난해 9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이 “울산 남구에 있는 한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어떤 남자가 현금 뭉치를 음료수 박스에 담는 것을 봤다. 뇌물로 의심된다”고 검찰에 전화한 것에서 시작했다. 울산지검 특수부는 은행 폐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를 분석해 문제의 남자가 원전 납품업체인 ㄱ사 대표 이아무개씨라는 걸 밝혀냈다. 이씨의 통화내역 조회 등을 거쳐 상자에 담긴 5000만원이 고리원전 김아무개 부장에게 전달된 사실을 확인한 뒤 수사는 급진전됐다. 당시 원전 비리를 수사했던 검찰 간부는 “원전 하나에 들어가는 부품만도 어마어마하게 많다. (관련된 업체 등 수사 규모가) 너무 방대해서 다 들여다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는 빙산의 일각만 밝혀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경미 김원철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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