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주소 내년 전면시행 앞두고
시민 63명, 3일 헌재에 심판청구
“지역문화·역사 담은 지명 사라질판
국가가 전통문화 계승 의무 어겨” 조선시대 수군의 진지인 금갑진성 아래에 있어 붙여진 전남 진도군 금갑리 일부는 내년부터 ‘웰빙길’로 주소가 바뀐다. 마을 뒷산에 장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지어진 충남 홍성군 옹암리 일부의 주소는 ‘토굴새우젓길’로 바뀐다. ‘쇠를 팔던 곳’이라는 경기도 파주시 금승리와 ‘덕고개’ 아래 마을인 덕은리 일부는 액정표시장치(LCD) 산업단지에 가깝다는 이유로 ‘엘시디로’로 주소가 바뀐다. 2014년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로 인해 우리 고유 동·리의 지명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강제시행’ 7개월을 앞두고 여전히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도로명 주소 표기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긴 처음이다. 향토 지명을 연구해 온 박호석 전 농협대 교수와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 등 63명은 2일 “내년부터 시행되는 도로명주소법은 우리 헌법 10조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이 보장하는 ‘자유롭게 전통문화를 누릴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3일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로명주소법 19조 2항은 올해 12월31일까지만 기존 지번 주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내년부터는 도로명 주소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호석 전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도로명 주소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사라지는 전국의 동·리 지명이 4000개 이상에 이른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논의 없이 정책이 추진된 까닭에 전통문화와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심각한 혼란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 전 교수 등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에서 “각 지역의 지명은 그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이며 타 지역과 구별되는 고유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이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데, 이러한 특색들이 사라진 도로명주소법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또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헌법 9조)에도 반한다”고 설명했다. 도로명 주소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박 전 교수 등은 “스마트폰·내비게이션 등이 발달·보급돼 지번 주소로도 손쉽게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새 도로명 주소를 시행하게 되면 결국 그 위치를 찾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소는 반영구적 척도로 오랜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로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새로 신설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 도로명을 주소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2006년 10월 “주소만으로 누구나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며 제정된 도로명주소법은 몇 차례 개정을 거쳐 내년 1월1일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안전행정부의 여론조사 결과 자기 집의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2.5%에 그쳤다. 이미 2011년 7월부터 도로명 주소가 법정주소로 인정돼 사용중이며, 정부는 주민등록이나 사업자등록, 건축물대장 등에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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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전통문화 계승 의무 어겨” 조선시대 수군의 진지인 금갑진성 아래에 있어 붙여진 전남 진도군 금갑리 일부는 내년부터 ‘웰빙길’로 주소가 바뀐다. 마을 뒷산에 장독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지어진 충남 홍성군 옹암리 일부의 주소는 ‘토굴새우젓길’로 바뀐다. ‘쇠를 팔던 곳’이라는 경기도 파주시 금승리와 ‘덕고개’ 아래 마을인 덕은리 일부는 액정표시장치(LCD) 산업단지에 가깝다는 이유로 ‘엘시디로’로 주소가 바뀐다. 2014년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되는 ‘도로명 주소’로 인해 우리 고유 동·리의 지명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행복추구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다. ‘강제시행’ 7개월을 앞두고 여전히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도로명 주소 표기에 대해 헌법소원이 제기되긴 처음이다. 향토 지명을 연구해 온 박호석 전 농협대 교수와 정동채 전 문화부 장관 등 63명은 2일 “내년부터 시행되는 도로명주소법은 우리 헌법 10조 인간의 존엄성 및 행복추구권이 보장하는 ‘자유롭게 전통문화를 누릴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며 “3일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로명주소법 19조 2항은 올해 12월31일까지만 기존 지번 주소를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내년부터는 도로명 주소만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박호석 전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도로명 주소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사라지는 전국의 동·리 지명이 4000개 이상에 이른다.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논의 없이 정책이 추진된 까닭에 전통문화와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심각한 혼란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 전 교수 등은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에서 “각 지역의 지명은 그 지역의 문화적 전통과 역사적 특징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이며 타 지역과 구별되는 고유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이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데, 이러한 특색들이 사라진 도로명주소법은 지역 주민들의 ‘문화향유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또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국가의 의무(헌법 9조)에도 반한다”고 설명했다. 도로명 주소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박 전 교수 등은 “스마트폰·내비게이션 등이 발달·보급돼 지번 주소로도 손쉽게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새 도로명 주소를 시행하게 되면 결국 그 위치를 찾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소는 반영구적 척도로 오랜 기간 동안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도로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새로 신설되거나 사라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이라 도로명을 주소로 사용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덧붙였다. 2006년 10월 “주소만으로 누구나 쉽게 목적지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며 제정된 도로명주소법은 몇 차례 개정을 거쳐 내년 1월1일 전면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해 12월 안전행정부의 여론조사 결과 자기 집의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32.5%에 그쳤다. 이미 2011년 7월부터 도로명 주소가 법정주소로 인정돼 사용중이며, 정부는 주민등록이나 사업자등록, 건축물대장 등에서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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