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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수표 위조범 검거

등록 2013-07-15 19:46수정 2013-07-15 20:39

1억짜리 수표 100억 둔갑시켜 ‘꿀꺽’…경찰에 덜미
지난해 8월 백지어음을 위조해 47억여원을 챙겨 달아난 사건으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수배된 나아무개(51)씨. 수배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달 만인 2012년 10월 또 다시 ‘한 건’을 준비한다. 이번엔 ‘100억원짜리 위조수표 사기극’이다. 위조수표를 교환할 이른바 ‘바지사장’과 백지수표 공급책·전주(돈 주인) 소개책에 이어 위조책·금융브로커 등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공모자들을 빠르게 접촉한다. 이렇게 3달이 흐른다.

올해 1월11일, 국민은행의 서울 한강로지점에 이아무개씨가 나타났다. 이씨는 이 은행 김아무개(42·구속) 차장을 통해 자신의 계좌에서 1억1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발행해 갔다. 이씨의 통장에 든 돈의 실제 주인은 사채업자 김아무개(42·구속영장신청)씨다. 김씨는 주범 나씨의 부탁을 받고 자기 돈 1억110만원을 투자했고, 일당은 진본 수표용지를 확보했다. ‘잔심부름꾼’ 이씨는 통장을 빌려주고 수표를 끊어가는 대가로 20여만원을 받고 사라졌다.

그러나 ‘위험한 장사’에 가담한 은행의 김 차장이 이씨에게 건넨 것은 가짜 수표였다. 에이(A)4 용지에 금액과 발행번호가 적힌 것이었다. 대신 김 차장은 이씨에 건네야 할 수표의 원본, 즉 금액이 적히지 않은 백지수표 1장을 빼돌려 이날 저녁 나씨에게 건넸다. 물론 대가로 5억원을 받기로 했다. 나씨는 시중은행은 1억원 이하 수표와 1억원을 초과하는 수표가 서로 재질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 1억원이 아닌 1억110만원짜리 수표를 발행하게 한 것이다.

위(변)조가 가능한 백지수표를 입수한 나씨는 대부업자 박아무개(45·경찰 최초 신고자)씨, 대부업자 박씨의 100억원 짜리 수표를 ‘타깃’으로 삼았다. 이에 동원된 바지사장 최아무개(61)씨는 박씨와 접촉해 지난달 11일 ‘회사 인수를 위한 자금력 증빙’을 이유로 100억원짜리 수표를 발행해 사본을 며칠 빌려달라고 주문했다. 대가로 7200만원을 박씨에게 줬다.

박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100억원 짜리 수표 사본을 주면서도 일련번호 10자리 가운데 3자리 숫자는 가리고 복사해 넘겨줬다. 그러나 나씨 일당은 지난 1월 확보한 진본 백지수표의 발행번호를 교묘하게 지운 뒤 그 위에 박씨의 100억원 수표 발행번호를 입혔다. 금액은 당연히 ‘100억원’이라고 적었다. 은행에선 일반적으로 타발기(도트프린트 방식)를 사용해 액면 금액 등을 적지만 잉크젯(뿌리기 방식)을 사용해도 감별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이런 변조작업은 별칭 ‘○사장’을 통해 단 하룻밤 만에 끝났다. ○사장은 아직 경찰에 붙잡히지 않아 가려진 3자리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수표를 변조했는지 등은 아직은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은 하루 만인 지난달 12일 오전 국민은행 수원 정자지점에서 곧바로 실행됐다. 바지사장 최씨는 창구에 100억원짜리 수표를 내밀었고 이를 받아든 같은 은행 조아무개(41) 차장은 이를 2곳의 법인계좌에 50억원씩 나눠 이체했다. 물론 사기단은 조 차장과 이미 안면을 튼 상태였다.

현금화된 돈은 67억원은 미화로, 30억원은 일본 엔화, 나머지는 5만원권으로 각각 바꿔 역할에 따라 분배했다. 나씨는 18억여원을 챙겼고, 돈주인과 사기단을 연결해 준 사채업자 김씨에게는 33억여원을 줬다. 또 바지사장 최씨에게 3억여원, 금융브로커 등 4명에게 24억원, 환전책 7명에게 7억여원 등을 분배하고 5억여원은 각종 수수료 명목 등으로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국민은행 김 차장은 범행이 들통나는 바람에 돈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100억원을 이렇게 쪼갰다는 건 피의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매우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사기단을 수사하면서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씨 등 주범 3명과 다른 2명을 구속하는 등 지금까지 모두 31명을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정확한 사건경위를 밝히고 잔당 검거와 자금회수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주범 나씨는 검거 당시 또 다른 1천억원대 금융사기 범행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행 김 차장을 통해 가짜 통장을 만든 뒤 잔고증명을 빌미로 재력가로부터 800억∼1천억원을 입금받아 가짜통장을 내주고, 진짜 통장을 빼돌렸다가 돈을 인출한다는 계획이라고 경찰은 덧붙였다. 수원/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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