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재판장 박평균)는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경찰 간부의 딸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5년 동안 옥살이를 한 정원섭(79)씨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씨 가족에게 26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1972년 9월 춘천경찰서 파출소장의 9살 딸이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한 뒤 숨진 채 논둑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당시 피해 아이가 자주 다니던 만홧가게 주인 정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정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의 가혹행위를 못 견뎌 허위로 자백했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됐다는 파란색 연필과 빗을 증거로 제시했다. 당시 9살이던 정씨의 아들은 “연필이 내 것”이라고 말했고, 가게 종업원은 경찰에게 구타를 당한 뒤 “빗은 정씨의 것”이라고 허위진술했다.
정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강간치상 및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범행 현장을 처음 목격한 이아무개씨가 “현장에서 본 연필은 누런색이었다”고 말했다. 정씨의 부인도 “경찰이 아들의 필통을 가져오라 해서 갖다준 일이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씨는 위증 혐의로 구속됐고, 구속 상태에서 법정에 나와 자신이 본 건 파란색 연필이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결국 정씨는 이듬해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그는 약 15년을 복역한 뒤 1987년 겨울 가석방됐다. 정씨는 2009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가족들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동네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출구 계단 1m 바로 앞에서 발견된 ‘노량진 참사’ 실종자 주검
■ ‘사형 구형’에서 ‘재산 압류’까지…전두환과 채동욱의 ‘악연’
■ ‘전시작전권 환수’ 박 대통령 공약 결국 ‘빈 약속’ 되나
■ 여기자들 앞에서 “처녀가 임신하는…”, 민주당 의원 또 ‘망발’
■ [화보] 경복궁에서 한-일 투견대회가…그때 그시절 경복궁에선 ‘별의별 일’들이
■ 출구 계단 1m 바로 앞에서 발견된 ‘노량진 참사’ 실종자 주검
■ ‘사형 구형’에서 ‘재산 압류’까지…전두환과 채동욱의 ‘악연’
■ ‘전시작전권 환수’ 박 대통령 공약 결국 ‘빈 약속’ 되나
■ 여기자들 앞에서 “처녀가 임신하는…”, 민주당 의원 또 ‘망발’
■ [화보] 경복궁에서 한-일 투견대회가…그때 그시절 경복궁에선 ‘별의별 일’들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