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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쏙] 입양특례법 시행 1년
8월5일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됐다. 입양을 촉진하는 대신 아이를 낳은 가정을 보호하는 쪽으로 개정했는데,
절차와 요건이 까다로운 반면 미혼모 보호 시설 등 제도적 뒷받침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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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지역 40대 초등학교 여교사 김아무개씨는 지난 6월 딸아이를 겨우 입양했다. 7개월이 걸렸다. 김씨는 “아이를 갖지 못해 입양을 결심했지만 절차가 복잡하니까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마음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주변에 입양을 선뜻 권유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입양을 망설이던 그는 지난해 9~10월 입양기관에서 아이를 만난 뒤 입양 결심을 굳혔다. 만약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입양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기 위해 열달이 걸리는데 그 정도도 못 기다리느냐고도 해요. 뱃속에 있는 태아와 교감하는 임신부하고는 처지가 너무나 다른 것 같아요. 입양이 잘한 선택인지 불안한 상태에서 마냥 기다리며 입양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입양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이는 김씨만이 아니다. ‘입양을 신청한 뒤 입양부모 교육, 가정방문, 법원 조사 등을 거치며 6개월은 걸리는데도 또 절차가 남아 있다고 한다. 가정법원이 입양을 허가하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리니 입양기간 단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3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이다. 국민권익위 관계자는 2일 “입양특례법이 지난해 8월 시행된 이후 30·40대 입양부모의 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법원에 입양 전담 부서·직원을 배치해 입양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5일로 입양 절차와 요건을 강화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지 꼬박 1년이 된다. 2011년 8월4일 ‘입양 촉진과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됐고 1년을 경과한 지난해 8월5일 시행됐다. 법이 바뀐 것은 정부가 ‘입양을 촉진하는 정책을 포기하고, 아동이 태어난 원가정을 보호하는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입양특례법을 보면, 입양을 하려면 △친부모에게 출생신고·가족관계등록을 의무화하고 △친부모가 입양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출생 후 7일이 지나야만 입양 동의 효력을 인정하는 ‘입양숙려제’를 실시하며 △관할 시·군·구 입양신고제가 가정법원의 허가제로 바뀌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국제입양되는 어린이의 안전·권리를 보호하고, 국제입양의 절차·요건을 규정한 ‘헤이그협약’에 정식 가입했다. 1993년 채택된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아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정부는 법적 기반 조성에 힘써왔다. 지난해 개정 시행된 입양특례법도 헤이그협약 가입 준비의 하나였다. 헤이그협약의 핵심은 “아동은 태어난 원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국내 입양하며, 두 가지가 아닐 경우 국외 입양을 통해서 가정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양특례법 보완 방안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출생신고를 해야만 입양을 보낼 수 있게 되자, 가족관계등록부에 출생신고 사실이 남을 것을 우려한 미혼모가 입양을 기피하고 아기를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양은실 홀트아동복지회 전북아동상담소 상담원은 “개정된 법은 입양을 하지도 말고, 입양을 보내지도 말라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동을 원가정에서 보호할 목적으로 법을 개정했는데, 사회적 여건을 뒷받침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법을 개정했다. 부작용이 많이 나타나 재개정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출생신고 뒤 아이가 입양되면 친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서 아이 기록은 삭제된다. 하지만 입양되지 않으면 기록이 평생 남는다. 국외 입양은 절차를 밟는 데 5~8년이나 걸린다. 이 기간에 미혼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출생 사실이 남게 돼 결혼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다.
요즘엔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를 선호한다고 한다. 보건복지부의 국내 입양 현황을 보면, 지난해 국내 입양아 1125명 가운데 여자(715명)가 남자(410명)보다 훨씬 많다. 재산 상속 등에서 부담이 덜하다는 점이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혼모를 보살피는 시설은 부족한데 입양 숙려를 하도록 한 점도 거론된다. 미혼모가 아기를 키울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7일 동안은 아기를 직접 키우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 입양아 1125명 가운데 1048명(93%)이, 국외 입양아 755명 중 696명(92%)이 미혼모의 자녀다. 한 10대 미혼모는 ‘아이를 낳았지만 남자친구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연락이 끊겼다. 아빠를 찾더라도 미성년자인 나와 남자친구를 대신해 양가 부모의 입양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 막막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고 국민권익위 관계자가 전했다.
경제력 없는 청소년 미혼모들은 모텔이나 찜질방 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아동양육시설을 찾는다. 입양기관 관계자는 “많은 미혼모들이 입양 절차를 상담하러 왔다가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연락을 끊는다. 아기를 포기하는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월 입양특례법 개정안을 냈다. 청소년 미혼모에게는 출생신고와 입양숙려를 의무화하지 말자는 것이 핵심이다. 백 의원 쪽은 “좋은 취지의 입양특례법이 현실에서는 영아 유기 같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상적인 법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아 전북 전주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박임근 기자 부부가 입양한 아들 찬오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입양을 희망하는 이들은 여전히 있다. 기자가 ‘가슴으로 낳은’ 아들은 이제 4살이다. 생후 2개월째인 2009년 12월 입양했다. 이후 기자의 삶은 바뀌었다. 온종일 아이를 돌보느라 힘들어하는 아내를 위해 일찍 귀가했다. 그만큼 저녁 약속 횟수가 적어졌다. 주말에는 아예 아이를 맡았다. 힘들기도 했지만 기르는 정은 날로 깊어갔다. 몸무게가 늘자 아들과 함께 목욕하면서 스킨십도 잦아졌다.
일상만 바뀐 것이 아니다. 아내와도 더욱 원만해졌다. 술자리가 많은 직업 특성 때문에 아내와 다투기도 했지만, 아이가 한가족이 되면서는 그런 기억이 없다. 아이가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서 악수를 시켜주면 큰소리를 낼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아내와 함께 오히려 아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아이는 하늘이 준 보물인 셈이다.
한국입양홍보회가 입양을 홍보하기 위해서 2009년에 연 행사에서 한 아이가 입양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손팻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작가 박찬학씨 제공
마음 자세도 한결 너그럽게 됐다. 아이를 맞아들이기 전엔 여유가 없었다. 과거에 놓쳤던 작은 일들에 새로 눈을 뜨게 된 것 같았다. 아이가 지금까지 별 탈 없이 커준 것에도 고마운 마음이다. 아이는 심장의 심방 사이 벽에 구멍이 뚫린 증세가 있었다. 심해지면 수술을 해야 했지만 다행히 자연 치유가 됐다.
아이를 입양하고부터 ‘입양인 모임’에 꾸준히 참여해왔다. 입양된 아이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모임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걸 알고는 며칠 동안 울었지만, 이 모임의 다른 친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절차와 요건이 까다로워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부모가 아이 양육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찰청이 집계한 영아 유기 건수는 2011년 127건, 2012년 139건이었고 올해엔 상반기에만 벌써 122건이다.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례도 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론도 있다. 이현주 보건복지부 입양특별대책팀장은 “영아 유기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증가해왔고, 이는 개정된 입양특례법 시행의 영향이라기보다는 혼전 출산과 가정 해체 등의 증가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북지역에서는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1년간 6명이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전엔 연간 50명 안팎이었던 것에 견줘 매우 적은 수치다.
보건복지부 쪽은 “지난해 8~12월 5개월 동안은 법이 개정된 초창기여서 어려움이 있어 전국적으로 입양 건수가 35건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는 한달에 약 70건씩으로 예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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