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변론재개 신청 불허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최태원(53·수감중)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대만에서 전격 체포된 김원홍(52) 에스케이해운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변론재개 신청을 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만 ‘기록 검토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최 회장의 선고공판을 한달가량 연기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는 오는 9일로 예정됐던 최 회장의 선고공판을 다음달 13일 오후 2시로 미뤘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백 수십권에 이르는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을 작성하기 위해 추가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연기 사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 회장의 변론 재개 신청은 불허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 쪽은 항소심 선고를 나흘 앞둔 지난 5일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은 실체 관계를 명백히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변론 재개를 신청했다. 최 회장은 그동안 “계열사 펀드 조성과 선지급은 선물투자자인 김 전 고문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해왔다.
재판부가 변론재개 신청을 ‘불허’하면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전 고문이 이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로 지목되긴 하지만, 굳이 증인신문을 하지 않더라도 최 회장 등의 진술 번복과 정황 증거만으로 유·무죄 및 형량을 판단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재판부가 판단했을 수 있다. 최 회장은 1심에선 “선물·옵션 투자를 위해 계열사에서 돈을 빼돌려 펀드를 조성한 것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가, 항소심에선 “펀드 조성엔 관여했지만 자금 인출에는 개입하지 않았다”고 진술을 바꿨다.
최 회장의 구속만기일이 다음달 30일로 다가온 것도 재판부가 변론 재개를 불허하는 요인으로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변론이 재개돼 최 회장의 구속만기일을 넘길 경우 최 회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특히 현재 대만 형사경찰국에 구금돼 있는 김 전 고문이 언제 송환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마냥 선고를 늦출 수도 없다. 대만과 우리나라는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아 별도의 협의를 거쳐 신병을 인도받아야 하는데 현재로선 강제추방 후 신병을 확보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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