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북구 현대자동차 명촌 주차장의 비정규직 철탑농성장을 찾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지난 7월21일 오전 철탑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울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대법 판결에도 꿈쩍않는 재벌
노동부 장관은 모르쇠로 일관 ‘건강 악화’ 올초부터 철수 권유
출구없는 ‘마지막 싸움’ 역부족 “정규직 전환 성과 못내 죄송…
아직 투쟁을 접은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인정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최병승(37)·천의봉(32)씨는 농성 295일째인 7일 철수 계획을 밝히며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 ‘사과’했다. “저희 결정이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현대차와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이들이 되레 사과를 한 것이다. 이들의 사과는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절반의 승리에 대한 자족보다는, 정규직 전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절반의 패배를 온전히 떠안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분노’와 ‘억울’의 다른 말처럼 들린다. 두 노동자가 떠밀리듯 철수를 결정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목숨이다. 3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23m 높이의 2평 남짓한 철탑 상판에 머물면서 천의봉씨는 심각한 허리 마비 증세를 견뎌왔고, 최병승씨 또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로한 상태다. 의료진은 지난 6월부터 철수를 권유해왔다.
하지만 이들을 끌어내린 진짜 손은 현대차와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농성자들로서는 현대차의 끈질긴 저항과 정부의 침묵이 지속되면서 더이상의 고공농성에 회의가 들 법도 하다. 현대차는 2010년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이들의 정규직화를 선언한 대법원의 ‘최병승 판결’에도 불구하고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후 최씨의 부당해고 소송을 9급심까지 진행하고, 판결의 근거가 된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현대차와 정규직 노조, 비정규직지회간 특별교섭도 지난달 20일 현대차 희망버스 방문 이후 중단됐다. 교섭위원이던 박현제 비정규지회장은 희망버스 폭력 문제로 수배중이고, 강성용 수석부지회장은 구속됐다.
정부는 모르쇠했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불법파견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법대로 직접고용을 명령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그는 현대차를 방문한 적도 없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신규채용 방식은 불법파견 사실을 부정하며 대법원 판결 취지를 오히려 무력화하는 방식이다. 이런 기업을 상대로 불법파견 문제를 타결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몸을 다치면서까지 버틸 순 없다”고 말했다. 신규채용은 불법파견 상태로 일한 세월을 인정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본이 버티면 노동자는 나가떨어지는 게 그간의 수순이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 등을 촉구하며 지난해 11월 15만4000볼트 송전철탑에 오른 한상균(52) 전 쌍용차지부장, 복기성(37)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도 지난 5월9일 171일 만에 병든 몸으로 울며 내려왔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은 이날로 183일째 무관심 속에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사나 정부까지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극한 투쟁이 반복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정규직화 등을 끌어내진 못했으나, 최병승·천의봉씨의 300일 가까운 투쟁은 재벌 대기업이 불법파견을 선도하며 심각성을 키워왔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을 안타까워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도 수용하지 않는 재벌이 얼마나 초법적인지 분명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회사 쪽 신규채용을 거부하고 정규직화라는 사안의 본질을 놓지 않은 이들의 투쟁이 전국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줬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희망과 용기를 줬다. 전국의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현대차 비정규직이 전체 비정규 노동자들의 요구를 걸고 싸우고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두 노동자는 이날 “불법파견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후 남아 있는 투쟁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힘이 남아 있을 때 내려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임인택 이정국 기자 imit@hani.co.kr
노동부 장관은 모르쇠로 일관 ‘건강 악화’ 올초부터 철수 권유
출구없는 ‘마지막 싸움’ 역부족 “정규직 전환 성과 못내 죄송…
아직 투쟁을 접은 것은 아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인정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철탑에 오른 최병승(37)·천의봉(32)씨는 농성 295일째인 7일 철수 계획을 밝히며 지상에 있는 이들에게 ‘사과’했다. “저희 결정이 부족하고 잘못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께 죄송합니다.” 현대차와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 이들이 되레 사과를 한 것이다. 이들의 사과는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절반의 승리에 대한 자족보다는, 정규직 전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절반의 패배를 온전히 떠안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또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분노’와 ‘억울’의 다른 말처럼 들린다. 두 노동자가 떠밀리듯 철수를 결정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목숨이다. 300일 가까운 기간 동안 23m 높이의 2평 남짓한 철탑 상판에 머물면서 천의봉씨는 심각한 허리 마비 증세를 견뎌왔고, 최병승씨 또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로한 상태다. 의료진은 지난 6월부터 철수를 권유해왔다.
(왼쪽부터)천의봉, 최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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