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가족] 가족관계 증명서
엄마! 엄마가 이 편지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제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지면으로 말을 걸어봐요.
가끔은 생각해봐요. 어느 날 딸이 엄마에게 사실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여자인데 여자를 좋아한다고 처음으로 말했을 때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몰라 이 책 저 책을 찾아보시고, 여러 군데 상담소에도 물어보고 했을 때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를. 다행히도 엄마는 드라마에 묘사되는 것처럼 오열하시지도, 비난하시지도, 이성 결혼을 압박하시지도 않으셨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난 참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친구한테는 해도 부모님한테는 가장 어렵다는 커밍아웃을 어쩌자고 그렇게 준비 없이 덜컥 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나중에 어쨌든 너는 내 딸이라고 하신 것을, 당당하게 주눅들지 말고 잘 살라고 한 말씀 언제나 기억하고 있어요.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 중의 하나인 저의 성 정체성과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숨기지 않고 연기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것과 엄마가 또 그 점을 이해해주셨다는 것은 참 행복해요. 저는 엄마가 제 엄마라는 게 정말 감사해요.
엄마! 딸은 잘 살고 있어요. 아, 아직 소개는 정식으로 안 드렸지만, 저랑 같이 살고 있는 언니가 실은 제 애인이에요. 정말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에요. 저를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주고요. 아마 엄마 아빠도 같이 이야기해보시면 아실 거예요. 앞으로도 이 사람이랑 오래 알콩달콩 반려자로 살고 싶어요. 소규모로나마 결혼식이라는 것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지요….
저에게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해 주셨기 때문에 또 부탁드리기가 죄송하기도 하지만, 저처럼 동성애자나 성소수자인 아들딸, 형제자매를 둔 가족들의 모임이 있대요. 아직 미국의 피에프엘에이지(PFLAG: Parents, Families and Friends of Lesbians and Gays)처럼 큰 단체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이제 시작 단계인 거죠. 자주는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모임이 있대요. 용기 내 부탁드려봐요. 어려운 걸음이겠지만, 다음에 저랑 같이 가주실 수 있으세요? 그곳에서 다른 부모님분들이랑도 경험 나누시고, 궁금한 점도 서로 더욱 터놓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엄마, 전에는 어려서, 엄마 아빠 마음도 잘 모르고 속도 참 많이 썩였죠. 볼 때마다 부쩍 느는 아빠 흰머리도 마음이 아프고, 같이 살 때 부모님 건강도 좀더 챙겨드렸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들어요. 지금이라도 좀더 살갑고 다정하게 엄마 아빠한테 말 한마디 더 표현하려고요! 엄마, 제가 쑥스러워서 말은 잘 안 해도 엄마랑 아빠랑 엄청 좋아하는 거 아시죠?
엄마의 더욱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은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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