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2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게 양여할 것을 규정하는 조칙을 발표한다. 이 날이 바로 한민족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경술국치일이다.
경술국치일 95주기를 맞아 이날을 기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조약이 체결된 장소에 기념 표석을 세우고, 조칙 발표일을 기념일로 하자는 논의가 시민단체와 국회에서 일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일합병 조약 체결지인 일제 통감관저 터에 기념 표석을 세울 계획이라고 25일 밝혔다. 이곳은 남산의 옛 국가안전기획부 건물 입구이자 <교통방송> 앞 공터이다. 연구소는 가로·세로 높이 70㎝ 크기의 표석에 ‘경술국치의 현장’이라는 제목과 ‘이곳은 1910년 8월22일 이른바 한일합병 조약이 맺어진 장소로 당시 통감관저가 있던 자리임’이라는 부연설명을 새길 계획이다. 조약은 총리대신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사타케 통감 사이에 22일 비밀리에 체결됐으나 일반에는 29일 알려졌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근현대 문화재 전문가인 이순우씨의 고증을 받아 조약 체결 터를 찾아냈다”며 “다시는 이런 치욕스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기념 표석 건립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구소의 이런 계획을 전달받은 서울시 남산공원관리사무소는 “조약체결 장소라는 사실에 대한 사학계의 공인된 검증 절차를 밟고, 관련 부서 협의와 공원심의위원회 의결도 거쳐야 한다”며 당장은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는 사학계 공인을 거쳐 공원관리사무소 쪽과 다시 표석 설치 협의에 나설 계획이다.
또 김영춘 의원(열린우리당)도 최근 ‘경술국치일 기념일 지정 요구 결의안’을 마련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서명 작업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8월29일을 경술국치일로 지정해 독립을 다지는 기념일로 삼았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광복절도 중요하지만 왜 나라를 잃는 국치를 겪었는지 교훈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기념일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기념일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어 국회가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의원들이 뜻을 모은다면 정부 쪽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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