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수리기사들에 들어보니
“LG전자 평가 시스템 따라
개인·센터별 등급 매기고
야근수당 줄지 말지까지 결재”
삼성 불법파견 의혹 터지자
협력사 직원 명함·명찰 교체
LG 브랜드 지우기 나서
“LG전자 평가 시스템 따라
개인·센터별 등급 매기고
야근수당 줄지 말지까지 결재”
삼성 불법파견 의혹 터지자
협력사 직원 명함·명찰 교체
LG 브랜드 지우기 나서
여름 대목, 한정수(가명·40대)씨는 일할 맛을 잃었다. 엘지(LG)전자 협력업체 수리기사인데 귀와 눈은 삼성전자서비스에 가 있다.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수리기사들과 자신의 처지가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착잡하죠. 삼성이나 우리나 운영방식, 고용형태, 근로환경 거의 같습니다. 한편으론 (삼성의 경우) 우리랑 달리 어렵게라도 조직화해 목소리를 내는 게 부럽습니다.” 한씨가 말했다.
그의 회사는 엘지와 도급계약을 맺고 엘지 간판을 내건 서비스센터에서 엘지 휴대전화, 컴퓨터, 가전 등의 수리를 전담한다.
지난 6월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의혹이 불거진 뒤 몇가지 변화가 있었다. 엘지 쪽 기사들은 ‘LG전자 베스트 서비스’란 표현과 로고만 박혀 있던 기존 명함 대신 ‘LG전자 지정 서비스 전문회사’라는 작은 활자가 추가된 새 명함을 지난달부터 지급받았다. 고객에게 신분을 보이고자 가슴에 달던 명찰에선 ‘LG전자’가 아예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다. 협력사 직원들은 지난달 11~19일 이런 지시사항이 담긴 엘지 쪽 전자우편을 센터장을 통해 그대로 전달받았다. 전자우편은 “브랜드 오적용 건에 대해 신속히 교체진행해 주시기 바란다”며 시안과 명찰 업체 연락처 등도 담았다. 지방 대도시의 엘지전자 수리기사 강석진(가명·40대)씨는 “2000년대 초부터 일했는데 이런 지시는 처음이다. (불법파견 의혹을 지우기 위한) 치졸한 꼼수다”라고 말했다.
원·하청 운용방식이 달라진 건 아니다. 수리기사들과 엘지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엘지는 제품 수리를 담당하는 협력사 신규 인력을 직접 공모해 최대 6개월 동안 평택 등지에서 합숙 교육·평가를 통해 자격을 부여한 뒤, 도급계약을 맺고 있는 전국 128개 서비스센터에 배치한다. 각 센터에서 수습기간을 거친 기사들은 대부분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한다. 이들은 엘지전자의 자회사(하이텔레서비스)가 직접 운영하는 별도의 10여개 서비스센터 정규직 직원과 하는 일이 일치한다.
이들을 통제하는 건 엘지전자의 고객평가 지수 등에 따른 개인별 평가다. 한정수씨는 “개인평가 점수가 낮으면 며칠 수임을 차단하기도 했다. 그 기간 아예 일을 못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강석진씨는 “시험, 고객평가 지수, 고객 불만 등을 종합해 개인을 5계급으로 나누고 3급까진 엘지가 수당을 준다”고 말했다. 또다른 기사는 “고객 불만이 직접 접수되면 본사에서 1박2일 집체교육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브이오시(VOC) 클리닉’이다.
엘지는 일일 처리율, 친절도 등 다섯가지 항목으로 센터도 평가한다. 또다른 지역의 수리기사 최병길(가명·30대)씨는 “전산망에 센터별 순위가 다 나온다. S, A~E 등급을 나눠 보너스를 차등 지급한다”며 “올 상반기 하위권의 한 센터가 전산망에서 사라졌다”고도 말했다.
2002년까지 엘지는 직영하던 전문 대리점을 일제히 아웃소싱했다. 현재 109개 협력사 대표(일부는 분점 겸함) 가운데 70여명(64%)이 엘지 출신이다. 수리기사만 4000명가량이다.
본사 직원이 주재하는 회의에 협력사 대표가 참석한 뒤 지시·협조사항 등을 팀장을 통해 직원에게 전달한다. 4~5곳 서비스센터를 관리하는 본사 실무자(SA), 지역·권역별 실무책임자가 휴대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직원에게 직접 업무를 지시하거나 격려한다는 게 여러 수리기사들의 설명이다. 강석진씨는 “본사 SA가 수리기사들의 야근이 야근수당 지급 대상인지 결정한다”고도 말한다.
이 모두가 원청이 협력사 노동자들을 직접 지시·평가·징계하며 인사·노무를 관리해왔다는 주요 근거로 쟁점화할 수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의혹 논거와 유사하다. 고용노동부의 ‘근로자 파견의 판단기준 지침’을 보면 업무지시 감독권, 징계권, 업무평가권, 근로시간 결정권 등을 원청이 사실상 지닐 경우 불법파견으로 본다.
비용 절감을 위해 구축된 원-하청 관계에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가전 담당 내근인 한정수씨는 아침 8시20분까지 출근해 조회를 하고 오후 6시까지 정상 업무를 처리한 뒤 이르면 저녁 8시, 늦으면 밤 11시까지 밀린 제품 수리를 한다. 지각하면 벌금도 낸다. 그는 “엘지와 계약에 따라, 수임 건수별 3000원 남짓의 야근수당 등을 받으면서 한 달에 250만~300만원을 번다”고 말했다. 일요일만 쉰다. 8년여 동안 성수기라는 이유로 여름철 휴가는 딱 한번 가봤다. 지방의 최병길(외근)씨는 하루 10~11시간씩 일한다. 월급에서 유류비를 빼면 150만~170만원 정도 남는다고 한다.
이에 엘지전자 홍보팀은 “(삼성과 달리) 서비스센터엔 엘지 본사 직원이 전혀 없고, 도급업체를 상대로 재무조사도 하지 않는다. 수수료도 협력사가 거둬 원청에 계약금을 내는 형태로, 정상적 도급관계다”라며 “도급업체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엘지가 고객 만족도 조사를 하지만, 개별 직원에 대한 고과·평가는 도급업체에서 자체로 한다. 본사에서 개인별 등급을 매기는 것은 우수 센터에 격려금을 주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또 “협력사의 대표나 현장 대리인 이외의 일반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는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최근의 명찰·명함 교체는 엘지 브랜드를 잘못 사용하는 업체 대상의 개선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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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의 불법파견 의혹이 제기된 뒤 엘지전자 협력사 직원의 명함이 바뀌었다. 기존 명함(위쪽)에는 없던 'LG전자 지정 서비스 전문회사'라는 문구가 새 명함 오른쪽 윗부분에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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