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부실수사가 원인…3억 지급을”
전두환 정권 때 일어난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이었던 허원근 일병의 사인이 ‘자살’이라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허 일병의 사인을 ‘타살’로 봤던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강민구)는 22일 허 일병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사망 원인이 자살인 이상 사망 원인 은폐나 조작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군 수사기관의 부실 수사로 장기간 유족이 고통받은 데 대해 “국가가 유족에게 위자료 3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망인과 신체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엠)-16 소총으로 흉부 및 머리에 총상을 가하는 자세를 취했을 때 전혀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점, M-16 소총으로 복부 2발, 머리 1발을 쏴 자살한 사례가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흉부에 2발, 머리에 1발을 쏴 자살하는 것이 드물기는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1심에서는 허 일병이 새벽에 머리에 총상을 입어 숨졌고, 이후 군이 자살로 위장하려고 오전 11시께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긴 다음 가슴에 추가로 2차례 총을 더 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3군데 총상 모두 가까운 데서 총을 쏴 생긴 상처이며 ‘생활반응’(살아 있을 때만 나타나는 몸의 반응으로, 상처가 살아 있을 때 생긴 것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데 쓰임)이 나타난 점으로 볼 때 생존해 있을 때 연이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총을 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사건을 조사한 헌병대 수사가 현저하게 부실하게 이뤄진 것이 이 사건을 30년간 의문사로 남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다. 헌병 제도의 개선 및 민간인이 참여하는 법의관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군대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말했다.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하던 허원근 일병(당시 22살)은 1984년 4월2일 3발의 총탄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군은 자살로 발표했지만 2002년 의문사위원회가 타살이라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에 반발한 군이 재조사를 거쳐 다시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2기 의문사위원회는 다시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는 등 공방이 계속됐다. 허 일병의 유족은 2007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2010년 1심 재판부는 “유족에게 9억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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