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 청소년과 연수원생
멘토-멘티 프로그램 문화축제
서로 마음 나누며 이해폭 넓혀
멘토-멘티 프로그램 문화축제
서로 마음 나누며 이해폭 넓혀
홀로 무대에 선 김소희(가명·15)양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힘이 들 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180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은 앳된 소녀가 부르는 노래에 빠져들었다.
28일 경기도 고양시 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사법연수원 주최로 ‘고양시민과 함께하는 희망나눔 사법연수원 법·문화축제’가 열렸다. 사법연수원과 의정부보호관찰소 고양지소가 올해부터 연수원생과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멘토-멘티 프로그램인 ‘지속적 근로봉사’를 시작했는데, 그동안의 활동을 갈무리하는 축제였다. 고양지소 청소년들의 밴드 ‘유리날개’의 보컬인 소희는 이날 유일한 단독 무대를 펼쳤다. 환호하는 관중들 속에서 소희의 멘토인 44기 사법연수생 구하경(24·여)씨와 윤이환(24·여)씨는 뭉클해졌다.
세 사람은 지난 5월 연수원에서 처음 만났다. 소희는 연수원 교수가 판사라는 말만 듣고 겁을 먹었다고 한다. 지난해 공갈죄로 1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고, 도중에 가출하는 등 규정을 어겨 보호관찰 기간이 2년으로 늘어난 상태였다. 소희에게 법은 무서운 존재였다. 구씨는 “법의 따뜻한 모습을 소희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셋은 한달에 두세번씩 만나 밥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처음에 입을 잘 열지 않던 소희는 이제 친구와 싸운 얘기, 가족문제 등을 털어놓는다. 멘토 언니들은 이래라저래라는 말 대신 소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했다. 학교를 중퇴해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던 소희는 아침 수업을 자주 빠졌는데, 언니들은 소희가 마음을 다잡고 수업에 빠지지 않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소희는 “언니들이 친구들보다 고민을 더 잘 들어줬어요. 언니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희는 늦잠을 자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기도 했다. 언니들은 기다렸다. 구씨는 “사람을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앞으로 법조인이 돼서도 사람을 볼 때 선입견 없이 판단해야 하니까요”라고 말했다.
올해 입소한 44기 연수원생 509명 중 62명이 이 멘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공식 기간은 5월부터 이달까지 3개월이지만 이들은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이날 공연에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이기도 한 44기 정재영 연수원생과 한예종 영화과 학생들의 멘토-멘티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다 공부 잘하고 똑같은 환경의 친구들밖에 없어요.” “연수원에서 공부만 하다가는 다른 사람과 공감하는 능력 없이,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 없이 졸업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다른 생각, 다른 세상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멘토 프로그램에 참가한 연수원생들의 고민이 드러났다. 약속 시간이 지난 지 두시간이 다 되도록 멘티가 나타나지 않자 한 연수원생은 “내가 그 친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극히 일부를 알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안 올 거라 생각 못했는데…. 그 친구한테 한쪽으로 강요한 게 아닌가, 그 친구 의사표현을 막은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라고 말했다.
구씨와 윤씨는 얼마 전 만남에서 소희에게 편지를 전했다. “노래하는 니 모습을 보고 팬이 됐어. 재능을 잘 살려갈 수 있길 바란다. 다음엔 교복 입고 있는 예쁜 모습 보고 싶어.” 집에 돌아와 편지를 본 소희는 카카오톡으로 언니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동안 약속 잘 안 지켜서 미안해요. 언니들을 좋아한 만큼 표현을 못했어요. 앞으로 자주 보고 싶어요. 약속도 잘 지킬게요.” 소희는 내년부터 학교로 복귀한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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