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업체 로비 청탁 5천만원 받아
검찰, 원전비리 관련 97명 기소
검찰, 원전비리 관련 97명 기소
이명박 정부 때 영향력이 커 ‘왕차관’으로 불렸던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지난 정권 때 자원외교의 성과로 꼽혔던 아랍에미리트 원전 공사와 관련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 원전비리 수사단(단장 김기동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은 10일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재직 당시 민간인 사찰을 한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복역중인 박 전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원전 비리 수사에 나선 지 105일째인 이날까지 원전 운영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의 김종신(67) 전 사장 등 97명을 기소했다.
박 전 차관은 2010년 3월 서울 강남의 호텔에서 한나라당 전 부대변인 이아무개(51·구속 기소)씨로부터 “원전 냉각수처리 설비 기업 ㅎ사가 아랍에미리트 원전의 냉각수처리 설비 공사를 맡을 수 있도록 한국전력 등에 힘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이씨는 이명박 정부 때 영향력을 행사했던 이른바 ‘영포(경북 영일·포항)라인’의 원전 브로커 오아무개(55)씨로부터 3억원을 받아 박 전 차관한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ㅎ사는 2011년 2월 한국전력과 960억원 상당의 아랍에미리트 원전 냉각수처리 설비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박 전 차관은 김종신 한수원 전 사장으로부터 원전 정책에 한수원 쪽 입장을 잘 반영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700만원을 받은 혐의도 사고 있다. 박 전 차관은 2010년 8월~2011년 5월 원전 업무를 총괄하던 지식경제부의 제2차관을 지냈다.
검찰은 5월29일 수사에 착수해 이날까지 43명을 구속하고 54명을 불구속하는 등 97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구속자 가운데는 김 전 사장 등 한수원 15명, 한국전력기술 6명, 한국전력 1명 등 원전관련 공기업의 전·현 직원 22명이 포함됐다. 이들이 업체들로부터 받은 금품은 23억8195만원이나 됐다.
검찰은 원전 부품 납품업체-부품 시험성적서 발급업체-시험성적서 검증기관-발주업체(한수원)로 얽힌 연결고리를 좀더 뚜렷하게 밝혀냈다. 이들 4곳의 전·현 임직원 16명이 신고리 1~4호기와 신월성 1~2호기의 부품 가운데 제어용 케이블의 시험성적서를 함께 조작한 뒤 원전에 납품했다. 현대중공업 등 대기업과 중소업체들이 원전 부품 납품계약을 따내려고 한수원 임직원한테 로비하는 관행도 드러났다.
그러나 원전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됐던 이들의 혐의를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의 보좌관을 10년 이상 지낸 박 전 차관은 기소했지만,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에 앞장섰던 이 전 국회 부의장은 ‘박 전 차관이 금품 수수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또 국가정보원장 비서실장 출신인 윤아무개(57)씨가 대학 동창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한테 ‘ㅎ사가 부탁한 인물을 한국전력 자회사 고위직으로 임명해달라’고 청탁해 실제 임명된 것을 밝혀내고 원전 브로커 오씨로부터 “ㅎ사로부터 2억8000만원을 받아 윤씨한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지만, 최 전 장관은 무혐의 처분했다.
한수원 송아무개(48) 부장이 현대중공업 임직원한테서 받은 10억원 중 4억원, 오씨가 ㅎ사로부터 받은 18억원 가운데 12억2000만원을 정·관계 인사 로비로 썼는지 등 사용처 의혹을 밝혀내지 못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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