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한가위|차례상 수다
2009년 추석은 10월3일이었다. 개천절과 겹친데다 토요일이었다. 공휴일 3일이 한 방에 날아갔다. 어디 추석뿐이었는가. 그해 설 전날은 1월25일 일요일, 삼일절도 일요일, 석가탄신일·현충일·광복절은 토요일이었다. 법정공휴일 15일 가운데 8일이 토요일 또는 일요일과 겹쳐 수많은 직장인들과 초중고생들에게 좌절을 안겼다. 2009년은 ‘공휴일의 무덤’이었다.
올해 추석은 모처럼 목요일에 걸리는 덕분에 주말까지 모두 5일을 연달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다. 하지만 이런 행운이 자주 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추석 전날과 추석, 추석 다음날 3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다. 추석이 목요일 또는 화요일에 걸려야 주말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가 가능하다. 반면 추석이 주말에 걸리면 주말에 하루만 더한 3일 연휴가 고작이다. 2008년과 2009년 연달아 추석이 일요일과 토요일이었고, 지난해 추석도 일요일이었다.
2000년부터 2029년까지 30년 동안 올해처럼 닷새 연휴가 가능한 추석은 열 번뿐이다. 반면 추석이 주말에 걸리는 최악의 경우가 8번, 추석이 월요일이나 금요일에 걸려 추석 전날 또는 다음날 공휴일이 무의미해지는 게 9번이다.
이런 ‘추석 연휴의 불안정성’은 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정신건강에만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회사원 김윤섭(41)씨는 “연휴가 짧으면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 재앙 수준이다. 모든 국민이 같은 날 귀향하고 귀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열차표 구하기도 어렵고 길도 더 막힌다.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추석과 비슷한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은 11월 네 번째 목요일로 정해져 있다. 수요일과 금요일까지 휴일로 정해 매년 주말을 포함해 5일 동안 쉰다. 회사원 윤민지(30)씨는 “미국 연수 때 추수감사절에 온 가족들이 모여 긴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추석도 ‘민족 최대의 명절’인데 연휴가 들쭉날쭉한 것은 문제 아니냐”고 말했다.
찬성합니다
“수확 전이라 농산물 값 비싸고
온난화 탓에 ‘여름추석’ 잦아져
아예 양력으로 날짜 고정합시다” 반대합니다
“오랜 시간 걸쳐 만들어진 문화
세태변화 좇아 바꿀 수는 없어
대체휴일제로 쉬는 날 보장돼” ■ 차례상 위협하는 더운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추석에도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다. 수확에 대해 감사하려면 농사가 모두 마무리된 뒤여야 한다. 예부터 농사의 준거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했는데, 그중 수확기는 추분(양력 9월23일 또는 24일) 즈음이다. 하지만 추석은 24절기와 무관한 음력 8월15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수확’보다는 ‘달’에 초점이 맞춰진 명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수확기가 오기 전에 추석이 닥치는 일이 일어난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는 지구 온난화는 추석과 수확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킨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2000~2010년 서울의 가을 시작일(일평균 기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은 9월25일로 1920년대 9월16일에 비해 9일 늦춰졌다. 2011년 국무총리실에 보고된 재난관리 개선 종합대책 중 ‘미래 기후변화 전망 시나리오’를 보면, 2050년이면 지금보다 여름이 19일이나 더 늘어나 10월 초순에나 가을이 시작된다. 이런 기후변화는 ‘추석의 여름화’를 부추긴다. 김대현 전 농협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계절변화 시작일을 기준으로 할 때 2000년부터 2029년까지 30년간 추석 양력일자 중 모두 22번(73%)이 기온상 가을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추석의 여름화는 추석 상차림과 선물 마련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과일인 사과의 경우, 전체 사과의 70%에 이르는 후지 품종은 10월 하순에나 출시된다. 9월 중순에 공급 가능한 사과는 주로 전북 장수, 무주 등에서 재배되는 홍로 품종인데, 온난화로 인해 홍로도 추석에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 신고 배 역시 9월 하순에서 10월 상순이 되어야 잘 익는다. 최지윤 이마트 사과 바이어는 “올해에는 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추석에 맞춰 좋은 사과를 구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장수에서도 해발 400m 이상 고지대 과수원에서 나온 사과를 중심으로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김대현 박사는 “추석이 이르면 농가에서는 인위적인 약품 처리를 통해 출하시기를 앞당기려는 현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고급 추석 선물로 꼽히는 송이버섯은 올 추석엔 구경도 하기 힘들다. 추석이 너무 일러 송이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추석을 일주일 앞둔 12일까지 송이 9.5㎏밖에 구하지 못했고,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비싼 1㎏당 130만원에 이른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추석에 아예 송이 판매를 포기했다. 태풍도 중요한 변수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7~9월에 집중되는데, 9월에만 20% 가까이 분포하고 있다. 온난화와 태풍 등의 이유로 농산물 수확이 힘들어져 가격은 오르고 품질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운 추석은 선물 배달에도 문제가 된다. 기온이 높으면 정육 등 신선식품이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재훈 이마트 과장은 “고객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상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에는 예년에 비해 보랭재를 2배씩 넣어야 한다”며 “특히 내년 추석은 9월8일로 올해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농산물 구입과 선물 배송이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추석 날짜를 바꾼다면 안정적으로 추석 연휴를 보장하는 방안은 곧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그 전날 또는 다음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것이 ‘대체휴일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통해 대체휴일제가 도입된 적이 있지만 매번 2년을 못 넘기고 폐지됐다. 2009년 ‘공휴일의 무덤’에 분노한 유권자들을 의식해 18대 국회 이후 대체휴일제 도입 등을 담은 여러 법률 개정안이 쏟아졌다.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국정과제에도 대체휴일제가 포함됐다. 이어 지난 12일 새누리당과 안전행정부가 당정협의에서 설 또는 추석 연휴가 일요일과 겹칠 경우 대체휴일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추석을 아예 한 달쯤 미루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최한 ‘쉬는 날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김대현 박사가 주장했다. 김 박사는 “(음력인) 추석 날짜의 변동 폭으로 인해 특히 사과와 배 등 청과물을 중심으로 농산물 시장이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고, 온난화로 인해 추석이 계절상 여름에 더 가깝게 분포하게 돼 추석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도 불일치를 빚고 있다”며 추석을 양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박사는 구체적으로 ‘농민의 날’인 11월11일을 양력 추석일로 지정하거나 농산물 생산 최적 시기의 특정일을 지정하는 방안, 10월 넷째 주 목요일 등 특정 요일을 추석일로 지정하는 방안 등을 예로 들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경련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명자 안동대 민속학과 명예교수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시행했던 일 중 하나가 전통을 바꾸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정착한 문화는 어떠한 규범이나 제도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추석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음력 10월 상달에 행하던 상달고사 또는 천신고사가 서양에서 11월에 행하는 추수감사절과 맥을 함께한다. 단오를 비롯해 중양절, 상달 천신제, 동지 등 세시명절과 그 무렵의 행사가 퇴색되었는데 추석까지 양력으로 바꾼다면 전통 명절은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수확 전이라 농산물 값 비싸고
온난화 탓에 ‘여름추석’ 잦아져
아예 양력으로 날짜 고정합시다” 반대합니다
“오랜 시간 걸쳐 만들어진 문화
세태변화 좇아 바꿀 수는 없어
대체휴일제로 쉬는 날 보장돼” ■ 차례상 위협하는 더운 추석 미국의 추수감사절처럼 추석에도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기는 하지만 약간의 ‘미스매치’가 있다. 수확에 대해 감사하려면 농사가 모두 마무리된 뒤여야 한다. 예부터 농사의 준거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했는데, 그중 수확기는 추분(양력 9월23일 또는 24일) 즈음이다. 하지만 추석은 24절기와 무관한 음력 8월15일이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세시풍속사전은 ‘추석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적고 있다. ‘수확’보다는 ‘달’에 초점이 맞춰진 명절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탓에 수확기가 오기 전에 추석이 닥치는 일이 일어난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는 지구 온난화는 추석과 수확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킨다. 기상청 자료를 보면, 2000~2010년 서울의 가을 시작일(일평균 기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은 9월25일로 1920년대 9월16일에 비해 9일 늦춰졌다. 2011년 국무총리실에 보고된 재난관리 개선 종합대책 중 ‘미래 기후변화 전망 시나리오’를 보면, 2050년이면 지금보다 여름이 19일이나 더 늘어나 10월 초순에나 가을이 시작된다. 이런 기후변화는 ‘추석의 여름화’를 부추긴다. 김대현 전 농협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계절변화 시작일을 기준으로 할 때 2000년부터 2029년까지 30년간 추석 양력일자 중 모두 22번(73%)이 기온상 가을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추석의 여름화는 추석 상차림과 선물 마련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대표적인 과일인 사과의 경우, 전체 사과의 70%에 이르는 후지 품종은 10월 하순에나 출시된다. 9월 중순에 공급 가능한 사과는 주로 전북 장수, 무주 등에서 재배되는 홍로 품종인데, 온난화로 인해 홍로도 추석에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 신고 배 역시 9월 하순에서 10월 상순이 되어야 잘 익는다. 최지윤 이마트 사과 바이어는 “올해에는 더위가 늦게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추석에 맞춰 좋은 사과를 구하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장수에서도 해발 400m 이상 고지대 과수원에서 나온 사과를 중심으로 물량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김대현 박사는 “추석이 이르면 농가에서는 인위적인 약품 처리를 통해 출하시기를 앞당기려는 현상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고급 추석 선물로 꼽히는 송이버섯은 올 추석엔 구경도 하기 힘들다. 추석이 너무 일러 송이가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추석을 일주일 앞둔 12일까지 송이 9.5㎏밖에 구하지 못했고,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비싼 1㎏당 130만원에 이른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추석에 아예 송이 판매를 포기했다. 태풍도 중요한 변수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7~9월에 집중되는데, 9월에만 20% 가까이 분포하고 있다. 온난화와 태풍 등의 이유로 농산물 수확이 힘들어져 가격은 오르고 품질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운 추석은 선물 배달에도 문제가 된다. 기온이 높으면 정육 등 신선식품이 쉽게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재훈 이마트 과장은 “고객들이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상할 가능성이 높아 올해에는 예년에 비해 보랭재를 2배씩 넣어야 한다”며 “특히 내년 추석은 9월8일로 올해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농산물 구입과 선물 배송이 더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추석 날짜를 바꾼다면 안정적으로 추석 연휴를 보장하는 방안은 곧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칠 경우 그 전날 또는 다음날을 공휴일로 정하는 것이 ‘대체휴일제’다. 우리나라에서도 195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 198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통해 대체휴일제가 도입된 적이 있지만 매번 2년을 못 넘기고 폐지됐다. 2009년 ‘공휴일의 무덤’에 분노한 유권자들을 의식해 18대 국회 이후 대체휴일제 도입 등을 담은 여러 법률 개정안이 쏟아졌다.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국정과제에도 대체휴일제가 포함됐다. 이어 지난 12일 새누리당과 안전행정부가 당정협의에서 설 또는 추석 연휴가 일요일과 겹칠 경우 대체휴일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추석을 아예 한 달쯤 미루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나온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최한 ‘쉬는 날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김대현 박사가 주장했다. 김 박사는 “(음력인) 추석 날짜의 변동 폭으로 인해 특히 사과와 배 등 청과물을 중심으로 농산물 시장이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고, 온난화로 인해 추석이 계절상 여름에 더 가깝게 분포하게 돼 추석에 대한 국민적 정서와도 불일치를 빚고 있다”며 추석을 양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박사는 구체적으로 ‘농민의 날’인 11월11일을 양력 추석일로 지정하거나 농산물 생산 최적 시기의 특정일을 지정하는 방안, 10월 넷째 주 목요일 등 특정 요일을 추석일로 지정하는 방안 등을 예로 들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전경련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명자 안동대 민속학과 명예교수는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가 시행했던 일 중 하나가 전통을 바꾸는 일이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정착한 문화는 어떠한 규범이나 제도에 의해서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우리의 추수감사절은 추석 때가 아니다. 오히려 음력 10월 상달에 행하던 상달고사 또는 천신고사가 서양에서 11월에 행하는 추수감사절과 맥을 함께한다. 단오를 비롯해 중양절, 상달 천신제, 동지 등 세시명절과 그 무렵의 행사가 퇴색되었는데 추석까지 양력으로 바꾼다면 전통 명절은 설 자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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