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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0대 백수에게 명절이란?

등록 2013-09-22 20:27수정 2013-09-22 21:32

친척마다 “요즘 뭐하니?” 물어 괴로운 날
고향 못 가고 우울하게 취업 공부 하는 날
“너 요새 뭐 하니?” 지난 19일 3년 만에 본 사촌 오빠의 첫마디였다. 일순간 가족들은 숨죽였다. 쭈뼛쭈뼛 말을 잇지 못하자 그가 다시 말했다. “너 그러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

김은비(가명·31)씨는 “사촌 오빠의 말과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을 못한 탓에 수년 동안 명절 때 고향에 잘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내려간 터였다. “그분들은 관심의 표현이겠지만, 만나는 친척들마다 ‘요즘 뭐 하냐’고 물어오는 통에 곤혹스러웠어요.”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김씨가 취업 준비를 한 지 벌써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공기업 입사 등을 준비하다 지금은 공무원 시험으로 돌아섰다. “입사 시험을 보면서 나이와 여성의 벽을 느꼈어요. 서른이 넘으면서 한해 지나면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무원 시험은 차별이 비교적 적으니까요.”

권종석(33)씨도 ‘여전히’ 취업 준비 중이다. 2008년 대학 졸업 뒤 5년째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식료품을 제조하는 한 대기업에 최종합격했지만 출근하지 않았다. “좀더 나은 곳에 취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후회가 돼서 잠이 잘 안 와요.”

2000년대 중후반의 ‘88만원 세대’는 이제 30대가 됐지만 여전히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명절은 ‘상처’다. 가족·친척의 눈길을 피해 고향집 문턱을 넘지 못하고 취업 준비에 열을 올려야 했던 이들의 마음은 휑하다.

이들의 절망은 소외감으로 더욱 깊어진 터다. 청년실업의 주인공은 20대일 뿐, 30대가 된 88만원 세대는 ‘찬밥’ 신세다. 지난 5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국회에서 공공기관 청년 채용 3% 의무화법이 통과됐지만, 이 법안의 대상은 15~29살이다. 취업준비생 이아무개(35)씨는 “20대도 절박하지만 30대 취업은 생존의 문제다. 30대는 부모님들도 은퇴하시고 비빌 언덕이 없다. 생계도 신경써야 해 온전히 취업에만 집중할 수 없어 지원이 더 절박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2008년 601만명이던 30대 취업자 수는 지난해 575만6000명으로 5년 전에 견줘 25만4000명이 줄었다. 30대 실업자는 늘어나고 있다. 8월 현재 30대 실업자는 18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만9000명 늘었다.

이런 현상은 지난 10여년 동안 경기활력이 줄어들면서 청년층 신규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은데다, 고령화로 50~60대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아진 탓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30대 백수’가 늘면서 사회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경섭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30대 미취업자는 결과적으로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하거나 늦출 수밖에 없고, 결혼하더라도 경제적 불안정성으로 이혼의 위험도 높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국가와 경제를 지탱하는 ‘재생산 체계’가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상은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되면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국가 경쟁력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김효실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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