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창립 30주년 기념식의 참석자들이 함께 ‘민청련’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원혜영 민주당 의원, 인재근 민주당 의원,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성유보 <한겨레신문> 초대 편집위원장, 함세웅 천주교 원로사제,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이해찬 민주당 의원, 이부영 민주당 상임고문,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독재 맞선 민청련 ‘창립 30돌'
김근태 초대의장으로 선출
장영달·이해찬씨 등 참여
80년대 민주화운동 구심체로
어제 학술심포지엄 열고 기념식
“대중운동조직 공개투쟁 계기 돼”
김근태 초대의장으로 선출
장영달·이해찬씨 등 참여
80년대 민주화운동 구심체로
어제 학술심포지엄 열고 기념식
“대중운동조직 공개투쟁 계기 돼”
1983년 9월30일 저녁, 서울 돈암동 가톨릭 상지회관으로 59명의 청년이 모여들었다. 경찰의 경계는 삼엄했다. 애초 참석하기로 한 150명 가운데 상당수는 성북경찰서로 연행됐다. 밤 9시였다. 임시의장을 맡은 김근태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민족사의 전진에 앞장서야 할 청년으로서, 민족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의 현실 상황은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새로운 사회 건설에 매진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민족통일의 대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참된 민주정치는 반드시 확립돼야 한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창립선언문’이 낭독되던 순간이었다. 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 학생운동을 벌인 청년들이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공개적으로 민주화 투쟁에 나선 것이다. 대가는 가혹했다. 전두환 정권은 민청련 집행부 대부분을 잡아들이면서 폭압을 가했다.
특히 김근태 초대 의장은 85년 9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22일 동안 참혹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이후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12월30일 파킨슨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당시 재판 과정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실체를 폭로하고 ‘87년 박종철 고문사건’의 진상과 군부독재의 잔인성을 폭로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러한 투쟁은 이후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직선제 개헌까지 이뤄낼 수 있었다.
민청련이 창립 30돌을 맞았다. 민청련 동지회는 30일 오후 4시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민청련 운동과 8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과 함께 30돌 기념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고 김근태 전 의원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 이해찬 민주당 의원, 장영달 전 의원 등 민청련 창립회원과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 등이 참석했다.
이해찬 의원은 “솔직히 경찰이 상지회관을 에워쌌을 때 감옥에 가게 된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민청련은 우리 사회의 ‘두꺼비’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뱀이 두꺼비를 집어삼키면 두꺼비 새끼들이 뱀의 몸에서 자라며 결국 뱀을 죽음에 이르게 하듯, 전두환 정권이 민청련을 집어삼키더라도 ‘민주 두꺼비’들이 탄생해 결국에는 군부독재를 무너뜨린다는 설명이었다.
성유보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운동권이 정권의 탄압을 피해 노동운동이나 야학 등 ‘지하’로 숨어들어갈 때 민청련이 공개적으로 투쟁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최정순 민청련 창립회원(협동조합 정을두레 대표)은 “민청련에서 남편인 이을호 민청련 정책실장을 만나 1984년 결혼하면서 ‘민청련 1호 부부’가 됐다. 민청련 활동으로 남편이 고문을 받고 후유증으로 30년 동안 정신병을 앓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고 회고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민청련 창립 30주년 기념사진 등을 함께 보며 옛이야기를 나누고, 앞서 세상을 떠난 김근태, 김병곤, 윤용하 등 19명의 회원을 기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인재근 의원은 “남편이 형을 살고 나와 집으로 올 때는 꼭 꽃을 사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념식에 앞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양관수 일본 오사카경법대 교수와 박태균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발표자로 나서 민청련의 활동을 되돌아봤다. 양 교수는 “민청련 출범은 이후 대중운동조직이 자신을 갖고 공개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민청련의 정신은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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